내과의사와 환자 얘기를 하다가 “Psychiatrists are not real doctors! - 정신과의사들은 진짜 의사가 아니야!” 하며 농담 비슷한 말을 했다.
환자가 병동 직원을 심하게 때린 정황이다. 내과의사는 환자가 복용하는 약의 혈중농도가 정상에 속하지만 좀 낮은 편이라 복용량을 높이면 좋겠다 한다. 삐딱하기로 소문난 그 환자에 익숙하지 못한 새파란 신참내기 직원이 맞았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 혈중농도가 미흡해서 사람을 치다니?
다른 정신과의사가 같은 환자를 놓고서, 그 놈은 ADHD 환자로 진단명을 때리고 거기에 맞는 약을 쓰는 게 어떠냐, 하며 대충대충 하라고 조언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꾸준히 각광을 받고 있는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 하는 육중한 우리말과 대조적으로 ADHD는 발음이 가볍고 운율적이다. 요즘 세상에 이 병명을 모르면 요즘 사람이 아니다.
지난 20여년 사이에 ADHD 진단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는 소식이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ADHD 동호회가 즐비하다지. 정신과의사는 물론 내과, 소아과의사들이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실정에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학교 교사, 학부모들도 ADHD에 대한 언급이 잦다.
당신은 이제 증상과 질병의 차이점에 대하여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귀담아 듣기 바란다. 기침은 증상이고 폐렴은 병명이다. 기침은 하나의 증세지만 폐렴은 기침, 고열, 엑스레이 소견 등등을 합친 임상적 증후군이다. 기침과는 달리 원인이 분명한 질환이다. 누가 기침을 좀 한다 해서 폐렴이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오진이다.
ADHD는 애매한 진단명이다. 주의력이 부족하다는 인상, 학교 성적이 부실하다는 사연, 안절부절하는 기질, 충동적 행동 등 몇 가지 이유로 자기 아이가 ADHD라는 병을 가졌다고 부모들은 입에 침을 튀기면서 의사를 설득시키려 한다. ADHD는 정신과적 진단이 아닌 사회적 진단이다.
왜 부모들은 ADHD 진단을 받고 싶어서 안달을 부리는 것일까.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약한 의사들은 마약 성분의 각성제를 우물쭈물 처방한다. 아이가 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부모들이 중독성이 강한 그 약을 먹고 해롱거리는 장면을 접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진짜 의사가 아니라는 농담은 정신과 진단명이 비과학적이고 체계가 없다는 사실에 뿌리를 둔다. 그들은 원인에 입각한 진단을 내릴 만큼 세련되지 못해서 정신장애의 결과를 묘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다. 정신과는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과학에 가깝다. 당신과 나는 정신과 질환의 과잉진단과 과잉치료 시대를 넘나든다.
‘schizophrenia’는 갈라지거나 찢어졌다는 의미의 전인도 유럽어 ‘skei-‘와 흉부와 복부를 구획하는 담장, 횡격막을 뜻하는 희랍어 ‘freno-‘의 복합어다. 고대 희랍인들은 사람의 정신이 심장을 받치고 있는 횡격막에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schizophrenia’의 본래 뜻은 ‘찢어진 횡격막’! 매우 비과학적인 묘사다. 정신분열증은 원인을 잘 모르는 정신장애의 엉성한 명칭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도 정신과의 특징이다. 남들을 성가시게 하는 놈, 삐딱한 성격으로 남을 해코지하는 놈, 뗑깡 만능주의자, 썰렁한 사기꾼, 그리고 올 데 갈 데 없는 알짜배기 범죄자들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런 못된 놈들이 내 병동에 몰려든다.
© 서 량 2020.06.14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6월 1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38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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