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51. Fishwife 스토리

서 량 2020. 6. 21. 03:57

 

꿈의 해석에 대하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꿈의 해석은 똥꿈이나 돼지꿈 따위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는 세간의 해몽과 엄청나게 다르다. 꿈은 개인적인 사연을 품고 있으므로 집단의식에 입각한 공식대로 풀이한다면 죽도 밥도 안된다. 꿈은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사적인 스토리텔링이다. 정신분석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하는 편이다.

 

꿈을 해석하는 사람 또한 스토리텔링에 몰두한다. 두 사람이 숙연한 표정으로 마주앉는다. 이들의 대화는 과학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작업이 아니다.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스토리에 전념할 때 둘 사이에 힐링이 일어나는 신비한 절차가 이루어진다.

 

어린아이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어머니가 읽어주는 베드타임스토리는 또 어떤가. 늑대, 곰, 혹은 남매를 가마솥에 넣고 삶아 먹으려 하는 마녀가 등장하는 스토리일 경우가 많다. 어린애는 그런 혹독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든다. 동화 속 무서운 세계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엄마가 든든하게 일깨워 주는 동안 마음 푹 놓고 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스토리텔링은 베드타임스토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화, 우화, 신화, 전설은 물론 시, 수필, 소설, 그림, 그리고 당신이 페북에 간간 올리는 여행지 사진도 다 스토리텔링이다.

 

또 있다. 무심코 리모컨을 누르면 우리의 의식을 삽시간에 사로잡는 TV. 그 울긋불긋한 화면을 뚫고 당신의 호기심을 볼모로 삼는 언론. 언론플레이. 응접실을 덮치는 연속 드라마들의 쓰나미. 아카데미 상 받은 영화. 시시때때로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는 광고. 마케팅 전략. 침을 튀기는 정치가들의 스토리텔링. 기타 등등.

 

‘story’의 뜻을 굳이 열거하면 이렇다. ➀허구적인, 재미있는 이야기 ➁실제 있었던 이야기 ➂과거에 일어난 사건 이야기, 역사 ➃신문, 잡지의 기사 ➄소설, 연극 영화 등의 이야기 줄거리 ➅거짓말

 

에헴, 스토리텔링에는 이렇게 ➁ ➂ ➃같이 중립적 의미도 있지만 나머지 ➀ ➄ ➅은 완전한 허구, 거짓말이다. 솔직히 스토리텔링은 매우 알쏭달쏭한 우리의 언행이다.

 

‘story’와 ‘history’는 발음과 스펠링이 거의 같다. ➂번이 지적하듯 ‘story’와 ‘history’는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17세기 말에 ➀번 뜻이 생겨났다. 그 즈음에 서구인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슬금슬금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동양인들은 언제 그 짓을 시작했을까. 훨씬 먼 옛날에?

 

‘cock and bull story,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옛날 런던 근처 마부들이 투숙하던 여인숙 겸 술집, ‘The cock’와 ‘The bull’의 단골 마부들이 가십이나 소문을 크게 부풀려서 서로에게 전달한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➅번에 해당한다.

 

‘old wives’ tale’은 늙은 아낙네들이 아닌 나이 든 여자들의 실없는 이야기라는 말. ‘wives’는 ‘wife’의 복수. 서구의 여성들은 나이든 여자들의 스토리텔링, 구전(口傳)에 의하여 지금껏 생활의 지혜를 쌓아왔다.

 

고대영어에서는 미혼, 기혼에 상관없이 여자를 발음도 짧게 ‘wif’라 했다. 지금까지 ‘wife’가 ‘여자’라는 뜻으로 남아있는 단어에 행동이 거칠고 입이 건 여자라는 뜻의 ‘fishwife’가 있다. ‘fishwife’에는 옛날 런던 어시장에서 생선 파는 여자들이 생선이 썩으면 어쩌나 싶어 안달이 나서 툭하면 욕을 해댔다는 스토리텔링이 묻어있다. 이거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 서 량 2019.12.01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12월 4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830801

 

[잠망경] Fishwife 스토리

꿈의 해석에 대하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꿈의 해석은 똥꿈이나 돼지꿈 따위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는 세간의 해몽과 엄청나게 다르다. 꿈은 개인적인 사연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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