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꽃 없는 봄날 / 김정기

서 량 2023. 1. 29. 20:16

 

 없는 봄날

 

                  김정기

 

꽃 없는 봄날도 간다

다른 별에서 온 꽃이라는 이름표 달고

나무마다 색깔대로 피어 있다

누구와도 손잡으면 큰일나는 

플라스틱 먼지로 뭉친 꽃

시간 지나면 녹는 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앓아 누운 뉴욕에

봄날은 간다

 

사방은 광야로 변신하여 

모랫벌에 물도 없이

사람마저 없는 세상엔 꽃이 있을리 없다

 

차 없는 광장은 넓기만 하고 

인적 드문 길은 멀기만 하다

 

봄 햇살은 설레지도 빛나지도 않는 잿빛

그래도 부르면 어디서나 대답하는 친구의 목소리

가시 넝쿨 흙더미에도 목마르지 않게 

아프지 않게

꽃 없는 봄날을 조심조심 벗어버린다

 

© 김정기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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