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66. Amor Fati

서 량 2020. 7. 10. 17:08

 

한 지인에게서 짧은 사연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마지막 문구가 “매일 좋은 일만 있으십시오”다. 이런 덕담은 듣기에 좀 그렇다.

 

사시사철 좋은 일만 일어나라는 덕담이 빈말처럼 들린다. 매일 아침 마스크를 쓰고 병원문을 들어서면 직원이 대뜸 이마에 레이저 체온기를 들이대는 2020년 6월과 결이 맞지 않는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명언이 떠오른다. 니체의 강인한 초인(超人) 철학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초인은 고난을 견디기보다 발벗고 나서서 사랑한다. 그는 신의 가호를 바라기보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다. 당신과 나에게 강한 동기의식과 패기를 부여한다. 그는 하릴없이 좋은 일만 호락호락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앉아있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편안한 삶이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힘의 고양이다.

 

니체의 ‘즐거운 지식(Gay Science, 1882)’에 나오는 ‘Amor Fati, 숙명 사랑’ 부분을 다시 읽고 유튜브를 찾아본다. 음미를 하면 할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나는 힘이 솟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전략) Amor Fati, 이제부터 삶이 내 사랑이기를! 나는 추악한 것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비난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비난하고 싶지 않다. 고개를 돌리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거부반응일 뿐. 그리하여 대체로, 전반적으로, 어느 날 내가 오로지 네, 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인 譯)

 

유튜브에서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파티’를 보았다. 시작이 이렇다. --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같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니체의 발언과 김연자의 가사를 비교한다. 니체는 사랑, 전쟁, 비난, 거부를 거친 다음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이쯤 되면 소망이 아닌 염원으로 보아야 하겠지. 반면에 김연자는 빈손, 소설, 실망을 거친 다음 내일을 바라보며 인생은 지금이라고 소리친다. 니체가 미래를 다짐하는 동안 그녀는 오늘에 집중하면서 흥겹게 몸을 흔든다.

 

1914년 12월 9일, 에디슨이 67살 되던 해, 뉴저지 웨스트 오렌지 소재 토마스 에디슨의 실험실 공장에 큰 불이 났다. 패닉에 빠진 아들에게 그는 “엄마한테 가서 친구들을 불러오라 해라. 이런 큰 불은 다시 구경하지 못할 거라고 전해라!” 했다. 다음날 그는 그곳에 더 근사한 공장을 지을 것을 다짐한다. 에디슨의 아모르파티!

                                           

‘fati’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 ‘fate’를 운명이라 하지 않고 숙명이라 번역한 점에 당신은 유의하기 바란다. 같은 ‘목숨 명’에 운명은 ‘옮길 운’이고 숙명은 ‘잘 숙’이다. 숙명이란 타고난 팔자처럼 요지부동의 기본여건이다.

 

‘fate’는 전인도 유럽어로 ‘말하다’라는 뜻이었다. 목숨 명(命)에도 ‘말’ 또는 명령(命令)이라는 뜻이 있는 것을 보면 어원학적으로 동서양의 사고방식이 같았다는 점이 놀랍다.

 

명령 하나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세상이었다. 지금 세상도 그렇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선포한다. 44살의 젊은 나이에 광기(狂氣)를 보인 후 55살에 명을 달리했지만 평생을 짙은 삶의 사랑으로 혼신을 불사른 인류 최초의 초인이었다.

 

© 서 량 2020.06.28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7월 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433031

 

[잠망경] Amor Fati

한 지인에게서 짧은 사연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마지막 문구가 “매일 좋은 일만 있으십시오”다. 이런 덕담은 듣기에 좀 그렇다. 사시사철 좋은 일만 일어나라는 덕담은 빈말처럼 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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