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42. 사랑을 할까, 생각을 할까

서 량 2019. 7. 29. 09:00

분노 조절을 남들처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라이언은 눈이 가을 하늘같이 짙푸른 30 중반의 백인 남자다. 민감한 발육 시기를 고아원에서 보낸 그는 걸핏하면 남과 싸우거나 말썽을 부리면서 오랜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살아온 성격장애 환자다. 병동 직원들 거의 모두가 그를 싫어하는 눈치지만 나는 두뇌가 총명한 그를 좀 좋아하는 편이다. 

 

세션이 끝나면 자꾸 “I love you, Doctor!” 하는 그에게 나는 으레 “Don’t love me. Think about what I said!” 한다. 그는 아직 왜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깊이 생각해 볼만큼 심리상담에 대한 관심이 없다.

 

라이언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자랐다는 이유로 지금 부모 역할을 해주는 정신과의사에게서 긍정적인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안달을 부린다. 사람은 늘 서로 비슷한 감성을 주고받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일찌감치 터득한 그가 우호적 반응을 얻고 싶은 동기의식으로 나를 부추기고 있다.

 

정신상담 관계가 아닌 현실에서 이런 이상한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이를테면 연애를 하는 남녀 사이에서 한쪽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대뜸 그런 말 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가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를 동물뇌와 인간뇌로 구분해서 유추하면 한 사람의 정신을 분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도마뱀이나 독수리나 오랑우탄처럼 당신과 나는 동물왕국에 속한다. 뇌 속에 동물과 인간이 항상 공존한다. 동물뇌가 감성(感性)을 추구하고 인간뇌는 이성(理性)을 촉구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감성은 강하고 이성은 약하기 때문에 대체로 우리는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생각해 보세요. 오랑우탄과 대학교수가 맨손으로 싸움이 붙으면 누가 살고 누가 죽게 되는지.

 

뒤늦게나마 라이언의 성숙을 촉진하는 좋은 방법은 사랑을 찾아 헤매는 ‘감성풀이’ 버릇을 버리고 거듭거듭 생각을 하는 습관에 젖게끔 도와주는 자세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내가 한 말을 생각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그의 뇌 속에 오래동안 자리잡아 온 ‘사랑’과 ‘생각’을 주관하는 동물뇌와 인간뇌의 비중을 바꿔보라고 넌지시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성격을 원만하게 바꾸는데 많은 난관이 있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에게 분명히 그런 총기(聰氣)와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선다.

 

2008년에 ‘늑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잠망경 칼럼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온라인 어원학의 원조였던 더글라스 하퍼 왈, ‘love’의 어원이 고대 영어에서 늑대를 뜻하는 ‘wulf’와 로마시대 속어로 창녀를 일컫던 ‘lupa’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그런 말이 없어졌다.

 

단지 ‘wolf, 늑대’의 어원에서만 이런 사연이 언급될 뿐. 아직도 현대 불어에서는 암늑대를 ‘love’와 발음이 거의 똑같이 ‘louve’라 한다. 19세기 중반경 늑대는 성에 굶주린 남성을 뜻하기 시작했다. 늑대와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쉬쉬해도 수상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think’에 가장 가까운 발음의 전인도유럽어 ‘tong’에는 ‘생각하다, think’와 ‘느끼다, feel’이라는 뜻이 함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해서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지금껏 내가 애써 떠들어댄 동물뇌와 인간뇌, 그리고 감성과 지성이 사실은 두루뭉수리로 섞여져 있다는 사연이다. 커피와 우유를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담갈색의 카페 올레처럼.

 

© 서 량 2019.07.28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7월 3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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