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39. 당신과 나의 부정적 성향

서 량 2019. 6. 17. 11:18

‘Negativity Bias, 부정적 성향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말은 사회학이나 정치에서도 자주 쓰이면서 이제는 잘난 척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일상어가 된 것 같다. ‘Bad is stronger than good’이라는 유행어도 있다.

 

악이 선보다 강하다는 예로 깡패와 모범생이 교정에서 말다툼이 일어나면서 끝내 모범생이 깡패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상상하시라. 근데 만일 우리의 모범생이 태권도로 잘 단련된 몸이라면? 함부로 벼랑 끝 전술을 부리던 깡패가 모범생에게 묵사발이 되도록 얻어터지는 광경이 속 시원하지 않은가!

 

‘negativity bias’는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팀이 2001년에 내놓은 컨셉이다. 그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부정적 자극 쪽으로 쏠리는 성향을 네 가지로 분류하면서 그 내용을 이렇게 요약한다.

 

부정의 강도: 같은 양의 긍정적 자극보다 부정적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1불을 얻은 만족보다 1불을 손해 본 것이 더 크게 속상하다.)

부정의 급경사도: 비슷한 정도의 자극이 점점 다가올 때 부정적 자극이 긍정적 자극보다 더 급격하게 그 강도가 높아진다. (법정 출두일이 가까워질 수록 생일 파티가 가까워지는 것보다 훨씬 더 신경이 쓰인다.)

부정의 우월성: 아무리 긍정적 자극이 많이 있어도 사소한 부정적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새 차를 사를 살 때 차체에 손톱만한 흠집이 있으면 그 차는 사지 않는다.)

부정의 차별화: 우리에게는 부정적 자극을 꼼꼼하게 식별하는 능력이 동물학적으로 부여돼 있다. (신문사 신춘 문예 심사위원들의 평을 곰곰이 읽어보라. 당선자의 칭찬보다 예선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결점을 낱낱이 들춰내는 그 가혹한 심사평을.)

 

이토록 우리가 부정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원시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동물들의 위험과 공포에 시달리며 늘 눈곱만치도 생명을 위협하는 가능성이 있는 부정적 자극에 소스라치게 과민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작금의 우리 핏속에 그 잔재가 남아있다. 동물이 아닌 사람을 향하여. 사람이 악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면서.

 

심리학자들이 추천하는 부정적 대인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한 번의 부정적 반응을 해소하기 위하여 다섯 번의 긍정적 반응이 필요하다는 통계수치를 염두에 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 한 번 얼굴을 찌푸렸던 상대에게 다섯 번을 웃는 낯으로 대해야 된다는 공식을 기억하시라. 물론 서로 좋아서 죽고 못사는 사이거나 큰 이해상관이 엮여진 관계라면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negative’, ‘never’, ‘neglect’, ‘neither’ 같은 단어에 들어가는 ‘ne-‘는 서구언어의 원조 전인도유럽어에서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리말 아니에도 ‘n’ 발음이 들어간다. 러시아어 니엣’, 독일어 나인’, 스페인어 나다’, 힌두어 나히’, 불어 은 다 ‘no’를 뜻한다. 우리가 ~’ 하는 긴 니은이 아니라 아주 짧은 니은 발음. -- 근데 이게 지금 ‘negativity bias’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만약 이 질문에 대하여 내가 모르겠다 한다면, 지금껏 내가 당신에게 부여한 많은 긍정적 자극이, 에헴, 단 하나의 멍텅구리같은 답변 때문에 왕창 무너지는 것인지. 앞서 말한 , “부정의 우월성때문에.

 

© 서 량 2019.06.16

--- 뉴욕 중앙일보 2019 6 19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