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32. 통찰력

서 량 2019. 3. 12. 07:35

 

‘insight’는 사전에 통찰력이라 나와있다. 지금껏 이 정신의학 용어를 안식(眼識)’이라 우리말로 옮기면서 나는 미국에서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참이다.

 

 

 

‘insight’는 통찰력이라 하지 않고 속 모습’, 혹은 유식한 한자로 내부시력(內部視力)’이라 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만의 속 세상이 있다. 수박 겉핥기 식의 껍데기보다 숨겨진 진실이 더 중요한 사람들에게 ‘insight‘속 모습이라 옮기면 훨씬 좋은 번역이 아닐까? ‘in()+sight(모습)=참 모습이라는 등식이 너끈히 성립된다.

 

 

 

‘insight’에 대하여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듯 환자들에게 대화식으로 강의를 했다. 인사이트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이라고 내가 듣기에도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정의를 내렸다. 한 환자가 어떻게 자기 속을 볼 수 있냐고 질문한다. 다른 환자 왈, 그거야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잘난 척 피력한다. 그렇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내를 얼굴 표정을 통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보여주는구나, 하며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정신과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사이트는 자신의 정신병이나 정신상태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뜻한다. 인사이트는 자기의 속 마음을 눈이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이 기능이 없거나 상실되는 관계로 의사와 상담치료사들이 아침 저녁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결하고 무엇을 나아지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아무런 실마리도 힌트도 없는 삶을 산다.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와 공포증(Phobia) 환자들은 스스로가 무엇이 문제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 고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대체로 속수무책이다. 너무 몰라도 불행하고 너무 알아도 고생을 하니 참 불공평한 세상이다.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환자들은 한 술 더 뜬다. 그들은 자기들의 요란한 마음가짐과 유별난 행동이 하나부터 열까지 남들 때문이라는 사고방식에 푹 젖어 사는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인사이트의 있고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삐뚤어지고 틀린 인사이트가 차고 넘치는 꼴이다.

 

 

 

인사이트는 정신과와 심리학에만 국한돼 있지 않고 일반적 개념으로도 통용된다. 그래서 사전에 통찰력이라 나와있는 것이 매우 적절한 설명이다. 인사이트는 자기 속 마음만을 관찰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심정, 사회적 현상, 그리고 일반 사물에 두루두루 적용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장 상서로운 인사이트로 남을 위한 배려심(配慮心)이 첫 번째로 손 꼽힌다. 배려심이란 남의 존재를 인식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환자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배려심이 없다. 심지어는 그룹 세션 도중에 난데없이 크게 노래를 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모욕하면 안된다는 배려심을 챙기면서 질문을 던진다. – “왜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이 안중에 없느냐?”

 

 

 

아까 자신에 대한 안식(眼識)을 키우려면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 된다고 주장했던 환자가 이렇게 말한다. – 환청 때문에 속 마음이 꽉 차 있어서 (“My mind is fully occupied”)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 그것은 마치 거울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려 했더니 이미 그 거기에 다른 사람이 버티고 앉아 큰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그는 혼동스럽게 곁들여 말한다.

 

 

 

© 서 량 2019.03.11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3월 1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