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물감옥 / 김정기

서 량 2023. 1. 26. 20:57

 

물감옥

 

                    김정기

 

물속을 걷는다

집안에서도 어디를 가도 물

컴퓨터 앞에 앉아도 물이다

 

헤엄도 못 치면서 물에서 살다니

걷어내야 할 거품도 껴안고

헐벗은 말들만 뛰노는 광장에서

하루해를 적신다

 

허둥지둥 달려온 길만 햇볕을 쬐고

아득한 것들만 모여 사는 동네에

아직도 낯설기만 한 물감옥의 주소를 쓴다

 

어디 까지가 물길이고 바람 길인지

분간 못하는 지점에 와 있구나

물결이 바람이 되어 밀어 닥쳐도

여기는 따뜻하고 온화하다

 

어둠의 척도도 잴 수 없는 물 속

그래도 당신은 여기까지 따라와

내 등에 물기를 닦아주고 있다

 

언제까지 물 안에서

대답하지 못하는 세월의 등마루에서

조금씩 잠들어가고 있는 의식세계에

연두 풀잎 한 잎 눈앞에 자란다

 

© 김정기 2018.08.21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이로스*의 잠 / 김정기  (0) 2023.01.27
넷이라는 숫자 / 김정기  (0) 2023.01.26
꽃이 지는 이유 / 김정기  (0) 2023.01.24
산벚꽃나무 숲 / 김정기  (0) 2023.01.24
집이 말한다 / 김정기  (0) 20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