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라는 숫자
김정기
여덟에 매어서 넷까지 덩달아 좋아했던 길
그 길가에 차 네 대가 주차하고
하필 그 네 번째가 새로 뽑은 차 8444일 때
네것 내것 가릴 것 없이 한참동안 황홀해짐을 누가 막으랴
꿈이 넷이라면 둘까지도 아끼며 걸어 온 길에 아직도 자갈들
구르지 않고 이끼 묻어 비바람 뜨거운 볕 당해내고 있으니
둘을 버리고 넷을 버리고 여덟까지 내던지고 앉은 섣달 초승
그래도 오늘아침 싸락눈이 잠깐 내리고 참새 떼가 마을로 날아 들더라
위트니 박물관에서 백 년 전 나뭇잎들을 쓸어 담아가지고 집에 와서 쏟으니
네 바구니 여덟 바구니를 채우려면 또 한 번 가 보아야 하겠네
세모의 어느 토요일 아침 어떤 백인 노부부처럼 품위 있게 손잡고
거기는 여덟층이 없으니까 사층에서 맴돌자
선으로 색으로 엉클어놓은 사람의 길 위에 겨울이 오고 있구나
둘을 여니 넷이 열리고 물 소리를 내며 또 겨울이 오고 있구나
© 김정기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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