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17. 말을 잘 하려면

서 량 2018. 7. 31. 19:15

동료 정신과의사와 점심을 먹다가 수사학(修辭學, rhetoric)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호소력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화제가 거기까지 번진 것이다.

 

정신과의사는 환자가 하는 말을 잘 듣는 것 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미숙한 사람에게 알기 쉽게 좋은 충고를 해 주는 것 또한 유효적절하다. 이것은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인생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상황과 흡사하다. 수사학과 정신과의사의 말솜씨는 상대를 잘 이해해서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과의사는 기왕지사 말도 잘하는 것이 좋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00여년 전에 수사학의 3대요소로 ‘logos, pathos, ethos’를 손꼽았다. 이것을 우리말로 그냥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로 옮기지만 나는 지성, 감성, 도덕성이라 힘주어 번역하려 한다. ‘ethos’는 사전에 기풍(氣風)’이라 나와있다고 아무리 당신이 우겨도 말이지.

 

광목인지 옥양목 같은 천을 몸에 걸친 입심 좋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테네 광장의 크고 작은 규모의 청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들의 말 습관을 연구한 수사학의 원조다. 그리스 속담에 수사학 공부를 하지 않으면 누구나 수사학의 희생자가 된다는 말을 보면 수사학이 그들에게 막중한 관심사였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 Whoever does not study rhetoric will be a victim of it.

 

이윽고 그 친구와 나는 사람 마음의 3대 요소를 수사학에 연결시킨다. 프로이트의 자아, 본능, 초자아 (ego, id, superego)’가 수사학의 지성, 감성, 도덕성에 부합되는 것을 깨닫는다. 음악의 3대 요소인 멜로디, 리듬, 하모니도 지성, 감성, 도덕성에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각성이 있었다. 나는 끝내 시()도 마찬가지라고 소리친다.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한다. 그때, 말의 앞뒤 문맥이 맞느냐 (logos=ego), 상대의 감정상태에 공감하느냐 (pathos=id), 또는 법과 질서를 일깨워주는 말을 하느냐 (ethos=superego), 하는 3대 요소가 관건이 된다. 어느새 환자에게 하는 말은 수사학이 돼버리고, 광목인지 옥양목 같은 옷감을 몸에 걸치고 고대 아테네 광장에서 목청을 가다듬어 연설하는 현자(wise guy)로 변신하는 정신과의사!

 

‘logos, 지성은 플라톤 이후 철학과 신학(神學)에서 논리 또는 말이라는 뜻으로, 신약성경을 번역한 학자들이 애착을 품고 매달렸던 단어다. ‘pathos, 감성은 고통, 재앙처럼 슬픔과 직결된 감정은 물론 사람이 느끼는 모든 동물적이고 인간적인 정서를 통틀어 일컫는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의 파토스가 없는 세상은 정신과의사가 굶어 죽는 세상이다.

 

‘ethos, 도덕성은 원래 한 시대의 사회적 추세나 관습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회라는 외부적 여건이 개인의 내적 상황을 통제하는 불문율이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이성(理性)을 철저하게 파헤친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의 도덕률(morality)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한 환자에게 지성적 발언이 얼마만큼 가능한지, 그 사람의 감성에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그리고 법을 어기려고 애쓰는 그에게 어느 정도 도덕성을 들먹여야 좋을지. ‘본능(id)’과 연결된 감성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말의 효능을 굳게 믿는 정신과의사로서 내가 수천 마디 말로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I understand your pain.” – 나는 당신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 서 량 2018.07.30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8월 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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