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017년을 장식하는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성희롱, 성학대, 성폭행 같은 남자들의 성범죄 소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미투(Me Too)’ 운동에 나선 많은 여자들을 뽑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도 당했다' 하며 'SNS'에서 외쳤던 것이다.
타임 표지에 여섯 명의 여자가 우울한 회색을 배경으로 서 있다. 윗줄 가운데 우뚝 선 여자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올 48세의 애슐리 저드. 맨 오른쪽 아래에 한쪽 팔만 보이는 여자는 텍사스 주 소도시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소문이 날까 두려워서 얼굴을 내놓지 않았다.
올해에 미국남자들이 위에 열거된 죄명으로 줄줄이 사퇴를 했다. 4월에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빌 오라일리가 퇴출당하고 10월, 11월에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CBS 앵커맨 찰리 로즈와 NBC 아침 뉴스의 맷 라우어가 사직하고, 며칠 전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이 큰 비난과 규탄의 대상이 됐다. 미국에 성추문의 쓰나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극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뉴스해설자일 수록 '미투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성폭행(sexual assault) 희생자라고 일괄적으로 처리한다. 성학대(sexual abuse) 또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 성적 괴롭힘) 보다 더 강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가지 유형을 뭉뚱그려 성추행 또는 성추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법적인 추세와 한국의 도덕적 성향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harass'는 17세기 초에 자극한다는 뜻의 고대불어에서 영어에 영입됐고 괴롭힌다는 의미도 있었다. 누구를 자극한다는 것은 괴롭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때가 많다.
괴롭힌다는 뜻으로는 14세기에 라틴어에서 파생된 'vex'가 가장 오래된 말이 아닌가 한다. 고리타분하게 들리겠지만 '성적 괴롭힘'은 'sexual harassment'보다 'sexual vexing'이라 해야 제격이 아닐까.
'vex'는 원래 흔든다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괴롭힌다는 말로 변했다고 문헌에 나와있다. 자극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원시적인 의식상태는 흔들리는 것이다. 어미가 아기를 이리저리 곱게 흔들어 재울 때나 실바람이 나뭇잎을 애무하듯 흔들 때처럼. 그러나 아기를 심하게 흔들어서 박자가 깨지거나 바람이 광풍으로 변한다면 엄마와 아이, 바람과 나뭇잎의 관계에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1964년에 비틀즈가 부른 노래 'Matchbox, 성냥갑'의 가사 끝 부분이 이렇다.
Well, if you don't want my peaches, honey / Please don't shake my tree / If you don't want any of those peaches, honey / Please don't mess around my tree / I've got news for you, baby / Leave me here in misery, all right -- 자, 내 복숭아를 원하지 않는다면, 허니 / 제발 내 나무를 흔들지 말아줘 / 저 내 복숭아 중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허니 / 제발 내 나무를 건들이지 말아줘 / 당신한테 말해줄 뉴스가 있어, 베이비 / 나 여기 그냥 비참하게 버려 둬, 정말
비좁은 성냥갑 속에서 서로 뜨거운 머리를 맞대고 화려한 발화작용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성냥개피들의 비애를 절감한다. 성추행 때문에 심리적 재난을 당한 여자들과 그로 인해 직업적 참사를 자초한 남자들에게도 인간적 차원에서 동정심이 솟는다. 대관절 남자들은 왜 복숭아를 보면 복숭아 나무를 흔들고 싶어 하는가.
© 서 량 2017.12.10
-- 뉴욕중앙일보 2017년 12월 1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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