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불쏘시개 / 김정기

서 량 2023. 1. 22. 23:08

 

 

불쏘시개

 

                   김정기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헤매고 있으면서

구겨진 모국어를 껴안고 흐느끼면서

문우들에게는 불붙은 꽃이 되라고

높게 키운 불에 눈을 뜨라고

 

입 다문 그대의 입이 열린다면

몸으로 성냥을 긋고

나를 살라 불길을 만들 수 있다면

산이 부서져 피리가 되는 아궁이에서

젖은 그림자를 말리며 은하가 되리

 

물결이 되지 못한 물은 강 밑바닥에 가라앉아서도

노래 부르며 타올라 가리, 가랑잎 되어

꽃으로 밀봉하여도 불꽃이 되기 위해

헝클어진 말들을 함께 추려 빗기자고

 

활활 타는 뜨거움으로 시간을 새길 수 있고

세계 곳곳을 달굴 수 있고

이제 빛나는 별들이 되고 있는 그대들 위해

한줌 재로 조용히 삭으러지리

 

© 김정기 201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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