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등걸
김정기
우리가 버렸던 그들은 말을 못했다
반세기를 눈비 맞고 꼼짝 안하고 있었다
뒤뜰에 나무 등걸 네 개가 서서
쨍한 햇살도 지나갔지만
이제야 돌아보고 몸에 난 구멍에 손을 넣었다.
바람에 날아든 어린 나무 뿌리도 만져지고
마른 기침소리와 말소리도 조그맣게 들렸다
억울했었다는 티도 없이 깊은 흠집에
흙을 받아들였다
그 흙에다 오이 고추도 심으며 달래 보는데
그들은 순순히 물을 받아 식물에게 주고 껴안아
죽은 나무 토막에도 속이 비어가는 세월동안
샌디 폭풍도 견뎠던 날들이
소리치지만 그냥 하나씩 삼켜버렸다
지금까지 온 길이 꿈결이듯 남은 날도
나무 등걸이 되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누구의 손길을
어디로 부는 바람을
모두가 시들어 떨어져도 나무 등걸엔 새싹이
© 김정기 2017.06.28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쏘시개 / 김정기 (0) | 2023.01.22 |
---|---|
파뿌리 / 김정기 (0) | 2023.01.22 |
다시 세모에 / 김정기 (0) | 2023.01.21 |
늦가을 묘지 / 김정기 (0) | 2023.01.21 |
입양가족 / 김정기 (0) | 2023.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