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나무 등걸 / 김정기

서 량 2023. 1. 22. 22:21

 

나무 등걸

 

                        김정기

 

우리가 버렸던 그들은 말을 못했다

반세기를  눈비 맞고 꼼짝 안하고 있었다

뒤뜰에 나무 등걸 네 개가 서서

쨍한 햇살도 지나갔지만

 

이제야 돌아보고 몸에 난 구멍에 손을 넣었다.

바람에 날아든 어린 나무 뿌리도 만져지고

마른 기침소리와 말소리도 조그맣게 들렸다

억울했었다는 티도 없이 깊은 흠집에

흙을 받아들였다

그 흙에다 오이 고추도 심으며 달래 보는데

그들은 순순히 물을 받아 식물에게 주고 껴안아

 

죽은 나무 토막에도 속이 비어가는 세월동안

샌디 폭풍도 견뎠던 날들이

소리치지만 그냥 하나씩 삼켜버렸다

지금까지 온 길이 꿈결이듯 남은 날도

나무 등걸이 되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누구의 손길을

어디로 부는 바람을

모두가 시들어 떨어져도 나무 등걸엔 새싹이

 

© 김정기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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