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92. 후치쿠치, 행키팽키

서 량 2017. 8. 7. 10:46

간부직원들과 회의를 하던 중 'hoochie coochie'라는 슬랭이 튀어나왔다. 여직원이 한 남자환자가 자기를 '후치쿠치' 하다고 놀렸노라 보고한다. 리듬감 있는 그 단어를 발음하면서 그녀는 가슴이 출렁거릴 정도로 양 어깨를 심하게 흔든다.

 

후치쿠치의 뜻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나는 정직한 외국인답게 그 뜻이 무어냐고 묻는다. 전 직원, 특히 여자들이 깔깔대며 웃으면서 몇몇은 얼굴마저 붉힌다. 속으로 이건 참 재미있네, 하며 나는 후치쿠치가 'hanky panky'하고 비슷한 뜻이냐고 질문한다. 나이 지긋한 남자 소셜워커가 여자의 후치쿠치 때문에 남녀가 행키팽키로 넘어가는 것이라 역설한다. 모두가 다시 박장대소를 하자 나도 마지못해 따라 웃는다.

 

'hoochie coochie'19세기 말경 여자가 엉덩이를 흔들면서 추는 'belly dancing, 배꼽춤'을 지칭했다. 근래에 'hoochie'는 창녀, 그리고 2003년 이후로 'coochie'는 여성 성기를 뜻하는 말로 변했으니 응당 그녀가 어깨를 흔들며 그 단어를 쓴 것이나 소심한 여직원들이 얼굴을 붉힌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후치쿠치는 점잖은 우리말로 '꼬리를 친다'라 하면 되겠다.

 

'hanky panky'는 후치쿠치에 앞서 19세기 중엽에 영국에서 생겨난 슬랭으로서 부정직한 행위라는 뜻이었는데 근래에 남녀의 불륜관계, 심지어 문란한 성행위라는 의미로 변했다. 그 소셜워커의 지적 대로 여자가 꼬리를 치면 불륜관계가 일어난다는 것이 크게 틀린 발언이 아니다.

 

'Coochie coochie coo!'는 어른들이 서너 살짜리 어린애를 간지럼 태우면서 하는 애정 어린 간투사다. 언어에 민감한 사람들이 듣기에 황당한 표현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구글 검색을 해보라. 보수성이 강한 네티즌들은 이 말을 쓰는 것을 금지하자고 제언한다. 그나저나 후치쿠치도 행키팽키도 쿠치쿠치쿠도 운율 감각이 철철 넘치는 단어라는 점이 흥미롭다.

 

영어건 우리말이건 의성어와 의태어는 운율감이 넘친다. 의성어는 소리를 흉내 내고 의태어는 모습이나 동작을 묘사한다. 의성어는 청각적이면서 의태어는 시각적이다. 언어는 항상 감각적이다. 'cock-a-doodle-doo, 꼬끼오 꼬꼬'는 의성어고 'dingle-dangle, 대롱대롱'은 의태어다. 당신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의성어나 의태어는 같은 소리가 반복될 때가 참 많다.

 

헉헉, 깔깔, 끙끙, 졸졸, 쿨쿨, 콜록콜록, 퍼덕퍼덕, 재잘재잘 같은 운율감이며 벌렁벌렁, 불쑥불쑥, 아장아장, 오락가락, 살금살금, 모락모락 같이 리듬 감각이 충만한 단어도 언어감각이 예민한 당신의 어깨를 으쓱으쓱 하게 만들지 않는가.

 

의성어건 의태어건 하여튼 간에 영어에도 리듬감이 생생한 말이 많다. 'willy-nilly (싫건 좋건)' 'dilly-dally (빈둥빈둥)' 'palsy-walsy (사근사근)' 'wishy-washy (우유부단)' 'Okie-dokie! (오냐, 오냐!)' 'Hubba-hubba! (좋지, 좋아!)' 기타 등등, 그 예가 끝이 없다. 인류의 감각과 언어는 반복강박증의 세찬 물결로 술렁인다.

 

반복강박증은 한자어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수입한 중국말에 추상적 의미를 들먹이며 투바이투(2x2)로 반복되는 4음절의 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시시때때 깜짝깜짝 놀란다. 방방곡곡(坊坊曲曲), 가가호호(家家戶戶), 사사건건(事事件件), 시시각각(時時刻刻), 전전긍긍(戰戰兢兢), 자자손손(子子孫孫), 삼삼오오(三三五五) 같은 말들이 그렇다. 그러니 나는 무슨 말이건 할라치면 차라리 뽕짝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 서 량 2017.08.06

-- 뉴욕중앙일보 2017년 8월 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