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82. 왜 울고 웃는가?

서 량 2017. 3. 19. 08:34

얼마 전 정신과 병동 환자들과 토론을 하던 중 우리는 왜 걸핏하면 울고 웃느냐는 화제를 다룬 적이 있다. 물론 그 질문에 정답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다만 나는 그때 그 환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정신 집중을 격려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한 환자가 모범생 같은 표정으로 사람은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다고 답변한다. 그렇다면 금방 태어난 갓난아기는 뭣이 슬프다고 우느냐며 나는 웃는 얼굴로 다그친다.

 

록스타를 자처하는 다른 환자가 우리는 너무나 기쁠 때도 울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나는 자고로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좋고 싫음에 관계 없이 강한 감정이 북받치면 웃거나 우는 법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심지어 사람이 웃는 모습과 우는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고 밀어붙인다.

 

우리는 '꽃피고 새 우는' 봄이라는 발상에 익숙하다. 한국 새들은 울기를 좋아하면서 미국 새들은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니까. 'birds singing'은 자주 들어도 'birds crying'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새도 사람도 어떤 내적인 욕구와 압력이 있으면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오늘도 울고 웃고 노래하며 소박한 생명현상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안면근육과 목젖뿐만 아니라 개나 소처럼 우리는 네다리를 움직인다. 광장에 모여 허공에 대고 덮어놓고 주먹질을 하면서 미친 듯 촛불이며 태극기를 흔든다.

 

동물(動物)이라는 단어 자체가 움직이는 물체라는 뜻이다. 동물은 심장이 펄떡거리는 동안만큼은 생체의 모든 세포들이 쉬지 않고 작동한다. '()'에는 움직인다는 뜻 말고도 옮기다, 이동하다, 동요하다, 시작하다, 또는 감응한다는 의미도 있다.

 

움직인다는 심각한 말을 'move'라 한다. 동물을 곧이곧대로 영어로 번역하면 'moving thing'이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물은 정식 영어로 'animal'이라 한다. 그건 라틴어로 숨을 쉰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서 대체로 짐승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move'에는 한자의 움직일 동()처럼 옮기다, 이동하다, 동요하다, 시작하다, 또는 감응한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moving company'는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라 우리말로 '이삿짐 센터'라는 뜻. 또 한편 당신의 양키 친구가 'I am so moved!' 하면 이사 갔다는 게 아니라 매우 감동했다는 말.

 

이제 다시 묻노라. 왜 당신은 울고 웃고 주먹을 휘두르고 팔과 다리를 떨며 춤을 추고 이민을 가고 이혼을 하는가. 우리는 왜 한시도 가만이 있지 못하는 촐랑이 불알처럼 흔들리는가?

 

사람의 뇌는 크게 둘로 나뉜다. 동물적인 뇌와 인간적인 뇌. 동물뇌(animal brain)와 인간뇌(human brain)로 말을 바꾸면 이해가 쉬워진다. 유식한 말로 전자를 중뇌(中腦, midbrain)라 하고, 후자를 전뇌(前腦, forebrain)라 한다.

 

호흡조절, 심장박동, 혈압, 체온조절 같은 기본적인 생명현상을 주관하는 곳을 중뇌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중뇌의 차원은 우리나 개구리나 메뚜기나 원칙적으로 마찬가지! 반면에 사업계획, 종교의식, 이념에 대한 신념, 상대성 원리의 이해 같은 추상적인 사고방식은 완전히 인간의 전뇌 기능이다.

 

고상하고 우아함을 추구하는 당신이라면, 에헴, 인간뇌가 동물뇌를 주관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당신이라면 우리 모두의 동물뇌가 인간뇌를 지배한다는 부끄러운 사실 또한 인정하기를 바란다. 왜냐고? 우리가 울고 웃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부적 압력을 밖으로 표출하는 동물 같은 현상이기 때문에.

 

© 서 량 2017.03.20

-- 뉴욕중앙일보 2017년 3월 2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