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78. 너무나 여성적인 트럼프

서 량 2017. 1. 24. 10:50

2017 1 20일에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군림한 도날드 트럼프의 말투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관심을 쏟아왔다.

 

나 말고도 트럼프의 연설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언어학자들이 많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느냐 보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말은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요하다.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얼마 전부터 트럼프가 이상한 말을 한다는 소식이 떠돌았다. 그가 'bigly'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소문이었다. 2016 10월에 한 연설 중에 "I'm gonna cut taxes, big league!" (나는 세금을 대규모로 삭감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하는 말이, 그가 "I'm gonna cut taxes, bigly!"라고 말했다고 트집을 잡은 것이다. 나도 궁금해서 유튜브를 들어봤더니 트럼프는 분명히 "big league"라 발음하더니만.

 

언론과 신문들은 그가 'bigly'라는, 지금은 폐어(廢語),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말을 썼다고 싸잡았다. 'big'이라는 형용사는 아직도 피둥피둥 살아있지만 거기에 '~ly '를 붙인 부사 'bigly'는 오래 전에 죽은 영어다.

 

빅 리그의 원 뜻은 야구에서 최고 수준의 스포츠 팀 그룹을 지칭한다. 그리고 야구단이 아니더라도 어떤 성공적인 단체나 부류를 일반적으로 뜻하는 말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유행한 보드빌(vaudeville) 슬랭으로 'big time'이라는 부사가 있다. 워낙은 흥행에 성공했다는 뜻이었으나 차츰 대단하다는 뜻으로 번져간 부사용법이다. 'big league'와 같은 뜻이다.

 

나는 형용사보다 부사가 더 좋다. 형용사는 요지부동의 명사를 수식하지만 부사는 생동하는 동사를 수식한다. 그 차이란 실로 사진과 동영상의 차이처럼 현저하다.

 

어바인(Irvine) 소재 칼리포니아 대학에서 정치 심리학과 제니퍼 존스(Jennifer Jones)가 쓴 박사 논문을 소개한 글을 엊그제 재미나게 읽었다.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에 걸쳐 이름난 정치가 35명의 연설문을 남성적 성향과 여성적 성향으로 분류했다.

 

남성적인 말투는 직선적이고 공격적이면서, 길고 어려운 말과,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to, with, above)나 관사(the, a)를 자주 쓰고 힘 없고 나약한 (I)’라는 말보다 힘 세고 막강한 우리(we)’라는 말로서 듣는 사람을 윽박지르는 경향이 있다.

 

여성적인 말투는 부드럽고 감성적이면서, 짧고 쉬운 말과, 위치감각이나 관사보다는 생동감 있는 동사와 보조동사(start, go, will), 그리고 '나'라는 미약한 인칭대명사를 잘 쓴다.

 

제니퍼 존스의 연구는 뜻밖의 결론을 자아냈다. 그것은 즉 도날드 트럼프의 말투가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그 숱한 정치가들 중에서 가장 여성적이라는 결론이다.

 

그의 언변은 당신이 깜짝 놀랄 정도로 구어체(口語體)이면서 짧은 말의 반복일 때가 많다. 비논리적인 여성화법의 대가인 그는 말을 하는 도중에 뚝 끊어버리는 수법도 자주 쓰는데 자기가 내리고 싶은 결론을 청중이 내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성 특유의 직관적인 말투다.

 

그 큰 덩치와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트럼프가 내뱉는 말의 내용은 걸핏하면 격렬하고 극단적이다. 그런 남성적 기질이 지난 10년 동안에 걸쳐서 가장 여성적으로 말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가장 남성적인 기질과 가장 여성적인 성향이 똘똘 뭉쳤을 때 그처럼 격렬한 소통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고기압과 저기압 골이 맞부딪쳤을 때 폭설이 쏟아지는 법이란다. 바야흐로 양성(兩性)의 극대화 시대가 온 것 같은 느낌이다.

 

© 서 량 2017.01.23

-- 뉴욕중앙일보 2017년 1월 2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