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77. 닭의 다섯 가지 덕

서 량 2017. 1. 10. 12:06

2017년 정유년 정초에 환자들과 그룹 토론을 하던 중 닭의 다섯 가지 덕에 대하여 말하고 싶어서 우선 올해가 무슨 띠인지 아냐고 물었다.

 

몇 명이 대답하기를 'the year of chicken' 또는 'cock'이라 했지만 내가 원했던 'rooster'라는 어휘는 나오지 않았다. 이 세 단어의 차이점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가 결국 닭의 덕에 대하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못했다.

 

'chicken'은 닭을 총칭하면서, 닭고기, 병아리, 젊은 여자, 또는 겁쟁이라는 속어로도 쓰인다. 다 자란 엄마 닭을 'hen'이라 하고 어른 수탉을 'cock' 또는 'rooster'라 하지. 그런데 'cock'는 골치 아픈 단어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말하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닭싸움을 'cockfight'라하고 비행기 조종석을 'cockpit'라 하는 경우는 예외로 치더라도.

 

'cock' 12세기 고대 불어에서 영어로 입수된 수탉이라는 뜻이었다. 'cocky'는 수탉처럼 으쓱대며 잘난척한다는 형용사다. 'cock'가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걸쭉한 쌍소리로 변한 것은 17세기 초였다.

 

'rooster''cock'보다 훨씬 늦게 17세기 말에 수탉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영문법 대로 'rooster' 'roost(집으로 돌아오다)'라는 동사 끝에 '~er'을 붙여서 생긴 단어, 즉 집으로 돌아오는 사물을 뜻한다.

 

'roost'는 방금 말한 뜻 외에도 횃대에 오른다는 의미로도 변했다. 수탉들이 집에 돌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어둠이 깔리면 어김없이 횃대에 올라 잠을 자기 위한 안식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굳이 동물의 귀소본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수컷들은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반면에 요사이 한국드라마에서 가끔 보듯이 저녁때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은 무슨 이유에서건 수컷 구실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날 환자들에게 얘기 못한 닭의 다섯 가지 덕은 다음과 같다. 1. 머리에 화려한 벼슬이 있어서 문()의 덕 2. 발에 붙은 사나운 며느리발톱은 무()의 덕 3. 닭싸움이 붙으면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용()의 덕 4. 먹을 것이 있으면 소리 내어 다른 닭들을 부르는 인()의 덕 5. 동트는 새벽에 크게 울어서 어김없이 남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신()의 덕.

 

닭은 한번에 몇 미터 밖에 날지 못하지만 엄연한 조류(鳥類)에 속한다. 우리의 1012지에 나오는 모든 동물들 중에 제대로 날개가 달린 날짐승은 닭 밖에 없다. 참새, 제비, 솔개, 꿩 같은 그 숱한 조류를 다 제켜놓고 왜 하필이면 닭이 선택됐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 민간신화는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데려온다 하지만 서구의 전설은 황새가 아이를 가져다 준다 한다. 이것은 즉 우리들 출생의 비밀이 수탉처럼 으쓱대며 발기하는 남근을 새의 비상으로 상징하는 집단적 무의식에서 오는 것을 시사한다.

 

서산대사가 낮에 우는 닭 소리를 듣고 불교의 참뜻을 깨우쳤다는 말이나 예수 가라사대 베드로야, 새벽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을 부인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도 닭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풍향계 꼭대기에 수탉이 앉아있는 모습 또한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를 일반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기독교적 전통에서 온다.

 

한국의 전통 혼례의식에서 신랑 신부 앞 상위에 암탉과 수탉을 올려놓는 것도 다가올 출산에 대한 기대심과 광명을 예고하는 선구자가 암흑과 액운을 물리치는 민속신앙의 발로인 것이다.     

 

이렇게 닭 얘기를 오래 하다 보니 양념이 듬뿍 밴 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든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그걸 시켜 먹어야겠다.

 

©서 량 2017.01.09

-- 뉴욕중앙일보 2017년 1월 1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