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거울 / 임의숙

서 량 2017. 1. 10. 01:06


거울


              임의숙



누구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거울입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의 거울입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 합니다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당신은

까칠한 수염을 밀고 화사한 화장을 하고

산을 뒤흔드는 웃음으로 쇠를 녹이려는 미소로

마법을 부립니다

치약의 거품을 품은 목젖의 트림이나

이 사이 낀 찌거기의 숨바꼭질도

입 속의 빨강 악취도 부끄럽지 않은

당신에 은밀한 습관을 나는 발설하지 못 합니다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뒷모습이 궁금 합니다

당신의 옆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원을 보여주지 못 합니다만

당신은 나에게 없는 소중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어제라는 기억과 내일이라는 상상을 볼 수 있는

당신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고 도는 길 위에 시간을 걷다가

앞서 걷는 누군가의 뒷모습에 끌린다면

당신의 뒷모습 입니다

팔을 열어 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당신의 옆모습 입니다

나는 깨지면 그만 입니다

당신은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습니다

나는 거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당신을 잊습니다.

'김정기의 글동네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국 / 임의숙   (0) 2017.01.26
겨울 비 / 임의숙  (0) 2017.01.18
겨울나무 / 임의숙  (0) 2016.12.06
배추밭 / 임의숙  (0) 2016.11.23
이방인의 계절 / 임의숙  (0) 201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