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임의숙
누구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거울입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의 거울입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 합니다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당신은
까칠한 수염을 밀고 화사한 화장을 하고
산을 뒤흔드는 웃음으로 쇠를 녹이려는 미소로
마법을 부립니다
치약의 거품을 품은 목젖의 트림이나
이 사이 낀 찌거기의 숨바꼭질도
입 속의 빨강 악취도 부끄럽지 않은
당신에 은밀한 습관을 나는 발설하지 못 합니다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뒷모습이 궁금 합니다
당신의 옆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원을 보여주지 못 합니다만
당신은 나에게 없는 소중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어제라는 기억과 내일이라는 상상을 볼 수 있는
당신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고 도는 길 위에 시간을 걷다가
앞서 걷는 누군가의 뒷모습에 끌린다면
당신의 뒷모습 입니다
팔을 열어 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당신의 옆모습 입니다
나는 깨지면 그만 입니다
당신은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습니다
나는 거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당신을 잊습니다.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국 / 임의숙 (0) | 2017.01.26 |
---|---|
겨울 비 / 임의숙 (0) | 2017.01.18 |
겨울나무 / 임의숙 (0) | 2016.12.06 |
배추밭 / 임의숙 (0) | 2016.11.23 |
이방인의 계절 / 임의숙 (0) | 2016.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