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16년 2월 7일 아침에 인공위성이라는 명목으로 로켓을 쐈다. 유엔 안보리는 긴급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입을 모아 북한을 힐책했다. 뉴욕 타임스가 이를 보도하면서 'condemn (규탄하다, 비난하다)'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래도 한자어를 써야 제격이고 영어 역시 권위 있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라야 무게가 잡힌다. 이것을 '나무라다' 혹은 '꾸짖다'라고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김정은의 무모한 행동을 대상으로 하는 말로서는 각광을 받지 못할 것이다.
'condemn'은 함께라는 뜻의 'com'과 저주한다는 말 'damn'이 합쳐진 단어다. 'com'의 'm'이 'n'으로, damn'의 'a'가 'e'로 바뀌었다. 'com'이 들어가는 'companion'은 동반자를 뜻하고, 'damn'은 오래 전 기독교인들의 금기어였던 'goddamn'의 후반부. 사전은 이 말을 분노, 짜증을 나타내는 욕설이라며 '망할, 빌어먹을, 제기랄'이라 옮긴다.
'damn'이나 'hell'을 곧이곧대로 발설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은 'dang'이나 'heck'이라 슬쩍 다른 말처럼 바꿔 말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원본을 변형시켜서 대단하다는 뜻으로 쓰는 속어 '졸라'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Hot damn!' 하는 간투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놀랍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이를테면 요즘 한국 연예인들 입에 붙어 다니는 'Wow!' 하고 아주 비슷한 뜻. 사람은 실망하거나 화를 낼 때도 욕을 하지만 기쁘고 즐거워도 욕을 한다.
얼마 전 한 환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He is not just a good doctor. He is a damn good doctor! (그는 그냥 좋은 의사가 아니에요. 그는 더럽게 좋은 의사에요!)" -- 이쯤 해서 당신은 반어법의 묘미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여기에 바로 'good'과 'damn good'의 차이가 있다. 사실 요새 'damn'은 욕도 아니라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훌륭하다는 감탄사 'Terrific!'도 무섭다는 뜻의 'terrible'이나 'terror(공포)'와 말의 뿌리가 같다. 우리 속어로 매우 좋다는 말을 '죽여준다'고 하는 것도 같은 어법이다. 때때로 공포영화를 손에 땀을 쥐고 즐기는 우리가 아니던가. 어찌 보면 무서운 것이 훌륭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김정은이 저지르는 만행을 칭송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작년, 2015년에 60여명의 당과 군 간부를 처형했단다. 그 중에는 그에게 이견을 제기했거나 행사 때 졸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의 공포 통치에는 "잔혹한 처형 방식이 한 축을 담당한다."는 기사를 읽는다. 좋은 조명과 근사한 배경음악에 힘입은 사각의 스크린에서 보는 공포영화와 현실 속 김정은의 잔인성(cruelty)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옛날 옛날 고려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Cool!" 하며 힘주어 말했더니 상대 양키가 "Cruel?" 하고 되물은 적이 있었다. 어찌 그놈은 멋지다는 내 발음 'cool' 을 잔인하다는 'cruel'로 혼동했는가. 나중에 곰곰이 생각했더니 전자는 가볍고 단순한 '우', 그리고 후자는 이중모음 '우어'였는데 내가 멋을 부리려고 '우'를 너무 강하게 발음한 결과였다.
물론 말만 가지고는 말이 안 되는 줄로 알고 잘 알고 있지만 나도 김정은을 매우 질타하는 대열에 선다. 별의 별 불쾌하고 모욕적인 단어가 다 떠올라도 이런 가벼운 발언은 어떨까 싶은데. -- 김정은이가 결코 'cool'하지 않고 'cruel'하기만 해서 참으로 난처하다.
© 서 량 2016.02.08
-- 뉴욕중앙일보 2016년 2월 1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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