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빼앗기는 마음*

서 량 2014. 12. 13. 21:30


한 달에 한 번씩 205 병동 환자들은 각자 푼돈을 모아 중국 음식을 단체로 시킨다 그리고 넓은 방에 나란히 앉아 요리를 먹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네 누구도 음식 씹는 소리를 내지 않아요 어쩌나?! 혈색이 안 좋은 정신과 환자들이 부동자세로 묵묵히 입만 움직인다 이건 그들이 들리지 않는 재즈 리듬에 박자를 맞추는 입놀림이야

 

내가 당신 마음을 빼앗는 순간

내 마음을 당신에게 빼앗긴다

 

저녁 노을이 무서운 기세로

병원 주차장을 덮는다

 

내가 저녁 노을에게 넋을 빼앗기자

저녁 햇살은 금세 사라지고

당신과 내가 짜릿하게 없어진다

 

낮이 밤으로 느껴지는 금요일 오후 한 시에 성격이 급해서 신세 거덜난 여자환자를 마주한다 이 여자는 갈 곳이 없다는 게 무언지 잘 알고 있고 앞뒤를 안 가리는 행동의 결과일랑 혼쭐나게 겪었다 어떡해?! 세상이 어렴풋해! 이건 창밖 풍경을 배경 삼아 205 병동 환자들이 약간씩 입을 벌린 모습이 담긴 실물 크기의 오일 페인팅이야

 

© 서 량 201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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