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여백을 두른다
김종란
무너진 곳 있으면 그곳에 걸터앉는다
저 멀리 눈 가는 곳 너무 흐린 회색은 지운다
물기 머금은 나무 한 그루의 평화를 둔다
허수룩한 곳에는 어김없이 푸르게 영롱한 풀
나무인양 의젓하다
담장을 두르고 내 안의 생각이
고루 호젓한 안마당
물기 부르는 퇴색된 마루엔 달리아
꽃 화분이 놓여있다 담장이 낮아서
돌개바람도 슬쩍 들었다 나가고
햇빛은 신을 벗고 낮잠 한바탕이다
기름 냄새 나는 눈빛 씻으며
소리없이 다가오는 것들 본다
가볍게 다가와 무겁게 목을 조인다
그 거친 바람 달래 담 밖에 둔다
여기 즈음에 있다는 것
시간이 서로 다른 돌들이 맞대어
오래된 이 시간을 동그마니 안으며
당신의 빛을 우려내는 곳
어느 여백에 푸름으로 담장을 두른다
© 김종란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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