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의 기약
윤영지
늦은 봄, 나무 밑 땅바닥에는 숱한 구멍들이 뚫려있었다
고개를 갸우뚱, 무슨 동물이 그랬을까
쥐 아니면 뱀, 아니면…
초여름, 아침부터 미국매미(Cicada)들이 요란하다
여름 정취를 느끼던 한국 매미와 달리
경계경보와 같이 사람을 바짝 긴장시키던 한 달 남짓
온 동네가 점령당했었다
덩치 큰 매미의 주검들이 띄엄띄엄
잊고 지내다 늦여름, 나무 밑 땅바닥에 숱하게 뚫린 구멍들
아니 또…
나뭇가지 쪼갠 틈에 알 낳고 어미가 죽고나면
두 달 남짓 깨어난 애벌레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어른 팔꿈치만큼 파들어간단다
그로부터 대략 17년 동안 잠을 자고
또 다시 땅을 헤집고 올라와 나무로 올라간다지
허물을 벗기 위해
맞아, 지금 이십대 중반인 두 아이들
초등학생 시절에도 한 여름이 요란했었지
내일 일도 모르는 우리네들
17년의 세월을 어둠 속에 견디다 나와
또 다시 17년을 대물림하는 Cicada들
늦은 봄, 우리 집 마당에 숱한 구멍을 뚫고 나와
초여름, 다시 울어댈 때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1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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