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손가락
김정기
아프리카 어느 섬에는
가족이 떠날 때마다 손가락 하나나
귓바퀴를 잘라
그 아픔으로 이별을 대신한다고 한다.
날카로운 열대의 잎으로 생살을 베이며
상처가 아물면 혈육을 잊지만 또 다음 이별이 오면
다음 손가락을 잘라 다섯 손가락이 없는 그는
어디 육신의 아픔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통증에 비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평생 정을 그리워하는 그의 유언이다.
남은 손가락으로 일하면서도
열 손가락의 힘을 일궈내는 사내의 미소가 화면에 뜰 때
나는 절벽 끄트머리에 무겁게 앉았다가
무중력의 세상으로 가볍게 떠오른다.
© 김정기 201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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