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남은 손가락 / 김정기

서 량 2023. 1. 8. 18:46

 

남은 손가락

 

                        김정기

 

아프리카 어느 섬에는

가족이 떠날 때마다 손가락 하나나

귓바퀴를 잘라

그 아픔으로 이별을 대신한다고 한다.

 

날카로운 열대의 잎으로 생살을 베이며

상처가 아물면 혈육을 잊지만 또 다음 이별이 오면  

다음 손가락을 잘라 다섯 손가락이 없는 그는

어디 육신의 아픔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통증에 비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평생 정을 그리워하는 그의 유언이다.

남은 손가락으로 일하면서도

열 손가락의 힘을 일궈내는 사내의 미소가 화면에 뜰 때

나는 절벽 끄트머리에 무겁게 앉았다가

무중력의 세상으로 가볍게 떠오른다.

 

© 김정기 2013.03.02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색 세상 / 김정기  (0) 2023.01.09
초록 멀미 / 김정기  (1) 2023.01.09
백 년 전 / 김정기  (0) 2023.01.08
D 트레인 / 김정기  (1) 2023.01.07
빗소리를 듣는 나무 / 김정기  (0) 2023.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