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빗소리를 듣는 나무 / 김정기

서 량 2023. 1. 7. 19:03

 

빗소리를 듣는 나무

 

               김정기

 

이제 나무 잎 위를 구르는 빗소리

그 착한 언어의 굴절을 알아듣는다.

몸에 어리는 빗방울의 무늬를 그리며

한 옥타브 낮은 음정에 울음이 배어

수군거리는 천년의 고요 안에

당신의 대답이 울려온다.

 

밤새 내린 비에 몸 적시고 서서

잎새의 속삭임에 귀 기우려

휘청거리는 나무의 눈물을 당신은 모른다.

혼자만 갈 수 있는 길 위에 비가 내리고

비의 말을 헤아려 일기를 쓴다.

산이 깊을수록 빗소리는 커져서

한줄기 빛이 되는 비밀을 터득하니

먼 곳에서 들리는 몸 떠는 소리를

이제 알아듣는다.

 

© 김정기 201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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