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듣는 나무
김정기
이제 나무 잎 위를 구르는 빗소리
그 착한 언어의 굴절을 알아듣는다.
몸에 어리는 빗방울의 무늬를 그리며
한 옥타브 낮은 음정에 울음이 배어
수군거리는 천년의 고요 안에
당신의 대답이 울려온다.
밤새 내린 비에 몸 적시고 서서
잎새의 속삭임에 귀 기우려
휘청거리는 나무의 눈물을 당신은 모른다.
혼자만 갈 수 있는 길 위에 비가 내리고
비의 말을 헤아려 일기를 쓴다.
산이 깊을수록 빗소리는 커져서
한줄기 빛이 되는 비밀을 터득하니
먼 곳에서 들리는 몸 떠는 소리를
이제 알아듣는다.
© 김정기 201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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