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인지 카나리아인지 아니면 붕새인지
조성자
십 수 년째 습관적 편두통을 앓고 있는 나
痛의 원인을 찾는 젊은 의사는
피의 내력을 거슬러 오르며 혈소판을 뒤지지만
실체가 좀체 파악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임시변통만 할 수 있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볕 기우는 테라스에 앉아 바람을 쐰다
주기적으로 공격해오는 테러범
그 끈질김에 차라리 한 수를 배워가고 있는 중인데
어떤 병에도 원인이 없을 리는 만무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자도 나이므로
꼼꼼히 청진기를 들이대고 진단을 해보기로 한다
부실한 육신이 짊어지고 온 부실한 생
둘 다 참 힘들었겠다
언덕도 평지도 매양 한 통속 양지는 약간의 피로감을 다스렸을 뿐
억세게 내뻗지 못한 마음들은 저희끼리 모여 뒷담화를 나누기도 했겠지
아주 잠깐 자유라고 이름 붙여져 들뜬 때도 있기는 했으련만
가위 눌린 밤처럼 식은땀을 내던 날들에 갇혀 없는 것 같고
하늘의 뜻을 아는 때라는 나이도 한 참 지났건만
아직도 입담만 주절대며 쓸쓸해진다
어떤 불가항력에 부딪고 좌초하는 일은 항상 있는 일
편두통 역시 내 안의 좌초가 원인 아닌가 싶다
가끔씩 성이 나서 몸의 사방을 쪼아대는,
밖으로 날아가지 못한 새가 살고 있기 때문 아닌가 싶다
내 안에 동거하는 게 독수리인지 카나리아인지 아니면 붕새인지
하여간 나는 이 자의 날개를 벼리고 벼려 공중선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라고 자가진단을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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