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딱따구리 / 최양숙

서 량 2011. 9. 17. 06:55

 

딱따구리

 

                 최양숙

 

 

 

빈 방에 앉아 창 밖을 본다

창 너머 솟아있는 은사시나무에

둥지가 비어있다

이젠 허물만 남은

딸의 방처럼

 

머리와 부리로 피를 튀어야

종족이 보존되는 운명

천적을 피해 우듬지로 올라

단단한 나무를 뚫기 위해

부리 끝으로 후려쳐내면

부서져 떨어지는 나무 살

 

나무를 부여잡은 발톱은

아비의 굳건함

머리 꼭대기 붉은 깃은

가장의 치열한 영혼

배 밑의 깃털을 뽑아서라도

알을 덥혀야 하는 어미의 마음

 

아이 떠난 이 아침도

딱따구리는

어디선가 방을 짓는다

두두두두 둑둑

다다다다 닥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