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최양숙
빈 방에 앉아 창 밖을 본다
창 너머 솟아있는 은사시나무에
둥지가 비어있다
이젠 허물만 남은
딸의 방처럼
머리와 부리로 피를 튀어야
종족이 보존되는 운명
천적을 피해 우듬지로 올라
단단한 나무를 뚫기 위해
부리 끝으로 후려쳐내면
부서져 떨어지는 나무 살
나무를 부여잡은 발톱은
아비의 굳건함
머리 꼭대기 붉은 깃은
가장의 치열한 영혼
배 밑의 깃털을 뽑아서라도
알을 덥혀야 하는 어미의 마음
아이 떠난 이 아침도
딱따구리는
어디선가 방을 짓는다
두두두두 둑둑
다다다다 닥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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