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ene
송 진
숨결을 고르고 한결 부드러운 이름으로 변장했으리란 낌새는 느꼈지만
그렇게 많은 눈물로 펑펑 몰아칠 줄이야
그동안 벼려온 네 비수의 섬광이 세상을 향한다 해도
미련은 일말의 희망을 지울 수 없어 어떤 간판은 자책이라고 고쳐 쓰기도 했다
먹장 구름 떼가 황망히 몰려가는 곳, 추억의 무덤에서
너와 나는 모두 피해자 없는 궐석재판의 가해자였을 뿐
말편자가 세상에 부대껴 닳는 건지 가해의 역동으로 깎기는 건지
세상의 술래가 되어 미궁을 헤매며 나는 혼미스러웠다
설 익은 오렌지를 땄던 건가
안간힘을 다해 안으로 밀어붙였지만 거긴 아직도 겨울이었지
모두들 희미한 체온이나마 보전하고자 맨살엔 인색하였고
새벽을 여는 기척에도 극성스레 짖어대던 개들의 광기에
오히려 창백한 백양나무 그림자를 위안 삼던 고슴도치의 시절
결국 끝없는 평행선을 따라 증발해 버린 두 개의 그림자
이제 너는 아름드리 고목을 뿌리 채 뽑아들고 나를 겨누지만
여기까지 겨우 끌고온 우리들의 시간이 노을 속에 부려지기 전에
지금껏 네가 엮어온 낯선 전설로
귀뚜라미의 울음들 좀 달래주지 않겠니, Eil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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