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검은 바다 / 임의숙

서 량 2011. 8. 26. 04:53

 

검은 바다

 

                           임의숙

 

 

            바다는 맨얼굴이었다

전조등, 누런 눈곱을 달고 침을 흘리며 

뒤척거리는 작은 배

새벽은 그 얼굴에 미끄럽지 않게 살짝 눈을 떴다

보드랍게 밟히는 모래알 대신

구멍 숭숭 뚫린 돌을 딛고 마주친

소주병 하나

눈 앞에 들어 보이기까지

그 잠시까지

 

낮에는 비틀고 저녁에는 툭툭 털어 던져버린 사이들

빨래 집게에 물린 옷가지들이 채 마르기도 전에

팔월은 겹겹이 줄을 그어 이슬비로 흘러 내렸다

혈관을 타고 눅눅해진 위장은

곰팡이 핀 위염을 앓고 있었다.

 

빈 병인 줄 몰랐다

흔들어 보고 돌려 보고 뒤집어 보고

파도는 소리를 바꿔가며 번호를 돌려보는데

찰~싹 찰~싹 뺨을 맞아도 열리지 않는

병뚜껑 꽉 다문 몸통 하나

넓은 등 어깨로 울고 간 사람은 남자였다

뚜껑을 닫아 소주병을 비워놓고 간

그의 마음을 알았을 때

섬 하나, 건너편에 푸른 웃음으로 떨어졌다

서귀포 바다에는 신발자국이 없다

바다는 검은 맨 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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