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다
임의숙
전조등, 누런 눈곱을 달고 침을 흘리며
뒤척거리는 작은 배
새벽은 그 얼굴에 미끄럽지 않게 살짝 눈을 떴다
보드랍게 밟히는 모래알 대신
구멍 숭숭 뚫린 돌을 딛고 마주친
소주병 하나
눈 앞에 들어 보이기까지
그 잠시까지
낮에는 비틀고 저녁에는 툭툭 털어 던져버린 사이들
빨래 집게에 물린 옷가지들이 채 마르기도 전에
팔월은 겹겹이 줄을 그어 이슬비로 흘러 내렸다
혈관을 타고 눅눅해진 위장은
곰팡이 핀 위염을 앓고 있었다.
빈 병인 줄 몰랐다
흔들어 보고 돌려 보고 뒤집어 보고
파도는 소리를 바꿔가며 번호를 돌려보는데
찰~싹 찰~싹 뺨을 맞아도 열리지 않는
병뚜껑 꽉 다문 몸통 하나
넓은 등 어깨로 울고 간 사람은 남자였다
뚜껑을 닫아 소주병을 비워놓고 간
그의 마음을 알았을 때
섬 하나, 건너편에 푸른 웃음으로 떨어졌다
서귀포 바다에는 신발자국이 없다
바다는 검은 맨 발이었다.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탱고 추실까요? / 조성자 (0) | 2011.09.05 |
---|---|
포도송이 / 임의숙 (0) | 2011.09.02 |
지층의 반란 / 윤영지 (0) | 2011.08.25 |
해탈 / 송 진 (0) | 2011.08.09 |
자메이카 빌딩 유리벽 / 윤영지 (0) | 2011.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