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5월27일 오후 6시05분에 방송된 KBS 2TV '뮤직뱅크'에 출연한 백지영이 8집 정규 앨범 'PITTA'의 타이틀곡 '보통'을 열창했다. 고혹적인 드레스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등장한 백지영은 노래 내내 애절한 감성 보이스를 뽐내며 호소력 짙은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특히 백지영은 감정에 너무 이입된 듯 박차를 놓치는 실수를 해 눈길을 끌었다."... (하략)
오늘 아침 좀 아까 이런 껄렁한 다음 뉴스 기사를 읽고 재미있다는 생각과 좀 께름직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유명가수가 노래를 하다가 박자가 틀렸다는 게 화제가 된 거다. 재밋대가리 하나 없는 뉴스 아니야? 유명가수건 무명가수건 노래를 하다 보면 박자가 틀릴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렇게 대수냐, 응? "뽐내며"라는 비아냥거리는 단어를 두 번씩이나 쓰면서 "박차"를 놓쳤다고 대서특필을 해야 되겠어? "박자"와 박차라는 단어를 구분도 못하는 주제에.
게다가 이 기사는 백지영이가 왜 실수를 했는지 아주 소상하게 그 이유까지를 제시하고 있네. 참 그 분석도 철저하기도 해라. 말인즉, 그녀가 감정이입이 지나쳤기 때문이래. "고혹적인 드레스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등장한" 백지영이가. 헤헤헤. 사촌이 박자가 틀리면 소화가 잘된다는 얘긴가? 킥킥.
요새 시끌벅쩍한 "나가수" ("나는 가수다"의 약자. 참 바쁘기도 한 언어습관이다. 말 몇자 줄였다고 해서 에너지가 얼마나 절약됐을까.)에 대한 사람들의 입방아가 떠오른다. 그 프로그램이 그렇게 인기라며? 누군가 처음에 탈락됐다가 다시 끼어주고 엊그제는 곡목선택을 하다가 서로 언성을 높히고 싸우고 했다며? 아닌가?
좋은 노래를 잘 부르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유명한 가수가 경쟁에서 탈락하느냐가 관건인 거야, 이게 가만이 보니까. 그게 재미있어서 죽고 못사는 거야. 그래서 관객이나 기자는 노래를 감상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고 가수가 무슨 드레스를 입고 "박차"를 잡느냐 놓치느냐를 따지는데만 눈이 벌게져 있는 거야.
이건 로마시대때 원형극장에서 검투사, 글래디에이터들이 피를 흘리며 경쟁상대를 쥑이는 장면에 열광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그러니까 가수도 그냥 조용하거나 기쁘고 즐겁게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꼭 그렇게 "가창력"을 과시해야만 호소력이 있는 거야. 검투사가 검붉은 선지피를 뚝뚝 흘려야 구경꾼들이 좋아서 미쳐 날뛰듯이 말이지. 걸핏하면 '피를 토하는 소리'를 밝히는 청중들이여. 그대들은 가수보다 폐결핵 말기 환자들을 무대에 올리는 게 어떤가.
똑 같다. 똑 같아. 가수나 관객이나 쿵짝이 잘 맞는다. 똑똑히 보라. 음악에 심취하는 것보다는 노래의 박자나 쪼잔하게 세고 앉아있는 저 악착스러운 관객들을. 입만 뻥끗하면 열창이나 절창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나가수" 출연가수들의 서글픈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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