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달 좀 넘게 직장 일이 한참 바빴던 바람에 한국 티브이 드라마를 중뿔나게 보지 못했다.
연속 드라마를 꼬박꼬박 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은 편안한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좀 했지.
근데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우연히 오늘 토, 일 드라마로 새로 시작한
<광개토태왕> 1편하고 2편을 앉은 자리에서 봤거든.
고구려 시대 장군이며 병사들이 말밥굽 소리도 요란하게 광야를 뛰어다니고 하더라.
참, 가수 혜은이 남편 김동현이가 중국, '후연'인가 하는 나라 장군으로 나오고 그러는데
광개토대왕 어린 시절의 '담덕'이 역할을 하는 이태곤이하고 칼을 빼 들고 서로 으름짱을 놓더라구.
무슨 다리 위에선가 어둠침침한 밤중에 시청자를 위해서 조명을 적절하게 해 놓은 폼나는 장면이었어.
둘 다 인상을 빡빡 쓰더라. 투구정장한 사내들 둘이서 대적을 하는데 인상은 더러울 수록 좋아요.
근데 이것들이 어찌나 목소리가 찌렁찌렁하게 큰지, 글쎄 서로 기를 죽이려고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어찌나 악을 쓰는지 귀청이 떨어지겠더라구. 말 내용은 서로 상대방 목을 베겠다는 거야 글쎄.
당신도 잘 알다시피 바로 상대가 코 앞에 있는데도 마치 한 50 미터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소리치듯이 목청을 높여서 무슨 얘기를 하자면 절대로 말을 빨리 할 수가 없다구. 응, 못해.
그건 불가능해. 웅변대회에서처럼 또박또박, 소위 시인들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정제"된 말을
악을 쓰면서 말할 때는 역시 느릿느릿하고 답답하게 하는 게 폼이 난다구.
2회 분을 봤으니까 두 시간 좀 넘게 역사를 점철하는 장군들의 고함소리를 들은 셈이다.
근데 참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거야. 당신이 믿지 못하겠지만. 킥킥.
광개토대왕 드라마가 끝났더니 내 목이 따갑고 아픈 거야. 드라마를 보는 동안 말 한마디도 안 했는데,
마치도 내가 두 시간 정도 소리를 질렀던 것처럼 목이 얼얼한 거야. 왜? 이유는 간단해. 헤헤.
맞아. 내가 이태곤이었고 내가 김동현이었던 거라. 그래서 그 배우들이 악을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컴퓨터 스피커를 왕왕 울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걔네들이 하는 말을 마음 속으로 뇌까린 거지.
큰소리 치는 걸 마음 속으로 따라 했으면 했지 왜 실제로 내가 고함친 것처럼 목이 아프냐는 거지.
감기가 들어서 목이 아플 때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연습하면 나중에 목이 더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옛날부터 이상하다고 느껴왔지만 말이지. 사실 악기를 불 때 목젖은 전혀 안 쓰잖아. 이상해. 열라 이상해.
어쨌거나, 요다음에 광개토대왕을 시청할 때는 미리 목에 좋은 차라도 홀짝홀짝 마시면서 봐야겠다.
드라마도 좋지만 목을 보호해야겠어. 환자 볼 때 쉰 목소리를 내면 나만 쪽팔려. 안 그래?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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