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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광개토대왕 후유증

서 량 2011. 6. 6. 12:11

요새 한달 좀 넘게 직장 일이 한참 바빴던 바람에 한국 티브이 드라마를 중뿔나게 보지 못했다.

연속 드라마를 꼬박꼬박 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은 편안한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좀 했지.

근데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우연히 오늘 토, 일 드라마로 새로 시작한

<광개토태왕> 1편하고 2편을 앉은 자리에서 봤거든.

 

고구려 시대 장군이며 병사들이 말밥굽 소리도 요란하게 광야를 뛰어다니고 하더라.

, 가수 혜은이 남편 김동현이가 중국, '후연'인가 하는 나라 장군으로 나오고 그러는데

광개토대왕 어린 시절의 '담덕'이 역할을 하는 이태곤이하고 칼을 빼 들고 서로 으름짱을 놓더라구.

무슨 다리 위에선가 어둠침침한 밤중에 시청자를 위해서 조명을 적절하게 해 놓은 폼나는 장면이었어.

둘 다 인상을 빡빡 쓰더라. 투구정장한 사내들 둘이서 대적을 하는데 인상은 더러울 수록 좋아요.

근데 이것들이 어찌나 목소리가 찌렁찌렁하게 큰지, 글쎄 서로 기를 죽이려고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어찌나 악을 쓰는지 귀청이 떨어지겠더라구. 말 내용은 서로 상대방 목을 베겠다는 거야 글쎄.

 

당신도 잘 알다시피 바로 상대가 코 앞에 있는데도 마치 한 50 미터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소리치듯이 목청을 높여서 무슨 얘기를 하자면 절대로 말을 빨리 할 수가 없다구. , 못해.

그건 불가능해. 웅변대회에서처럼 또박또박, 소위 시인들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정제"된 말을

악을 쓰면서 말할 때는 역시 느릿느릿하고 답답하게 하는 게 폼이 난다구.

 

2회 분을 봤으니까 두 시간 좀 넘게 역사를 점철하는 장군들의 고함소리를 들은 셈이다.

근데 참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거야. 당신이 믿지 못하겠지만. 킥킥.

광개토대왕 드라마가 끝났더니 내 목이 따갑고 아픈 거야. 드라마를 보는 동안 말 한마디도 안 했는데,

마치도 내가 두 시간 정도 소리를 질렀던 것처럼 목이 얼얼한 거야. 왜? 이유는 간단해. 헤헤.

맞아. 내가 이태곤이었고 내가 김동현이었던 거라. 그래서 그 배우들이 악을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컴퓨터 스피커를 왕왕 울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걔네들이 하는 말을 마음 속으로 뇌까린 거지.

 

큰소리 치는 걸 마음 속으로 따라 했으면 했지 왜 실제로 내가 고함친 것처럼 목이 아프냐는 거지.

감기가 들어서 목이 아플 때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연습하면 나중에 목이 더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옛날부터 이상하다고 느껴왔지만 말이지. 사실 악기를 불 때 목젖은 전혀 안 쓰잖아. 이상해. 열라 이상해.

 

어쨌거나, 요다음에 광개토대왕을 시청할 때는 미리 목에 좋은 차라도 홀짝홀짝 마시면서 봐야겠다.

드라마도 좋지만 목을 보호해야겠어. 환자 볼 때 쉰 목소리를 내면 나만 쪽팔려. 안 그래?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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