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몽상
임의숙
오늘은 아래층 보다는 위층이 좋다
하얗게 길을 긋는 백조를 따라가다가 문득 나는
내가 날 수 있는 동안의 요금을 적어본다
공간의 허공이 넓을수록 삶의 계산대에 기대어
세어보는 숫자는 좀 여유로울까
편도인 이 계절이 짝수가 아닌 홀수이듯이
저 길은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내일로 가는 길이라고
백조의 흩어진 날개 구름을 모아 삼월은
파랗지도 노랗지도 않은 들판을 편지지로 펼쳐
기어이 내일로 떠난 애인에게 다 속삭이지 못한
나의 변명을 쓰게 한다
구름의 겉 표지에 제목을 붙여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바람의 심장을 흔들 것이다
첫 장을 열면, 띄어 쓰기 사이로 비가 내릴 것이다
그리고 변명은 문장마다 얼룩진 꽃 피겠다
새들의 하루가 허공에 묻혔다 내려앉는 밤
고요 속의 어둠이 이름을 지워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더 붉고 차디차게 자란 어둠이 마르지 않은 목소리로 묻는 것이다
편도가 좋은지 왕복이 좋은지를......
그리고 아침인 내일로 가는 것이다
나는 삼월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쓸 것이다
왕복요금을 내고 가는 삼월은 없나? 하고.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보내기 / 황재광 (0) | 2011.03.11 |
---|---|
Lent / 송 진 (0) | 2011.03.10 |
낮게만 흐르다가 / 송진 (0) | 2011.03.01 |
자연사 박물관 / 조성자 (0) | 2011.02.27 |
캐멀은 상주이다 / 임의숙 (0) | 2011.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