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삼월의 몽상 / 임의숙

서 량 2011. 3. 7. 10:42


삼월의 몽상

 

                           임의숙

 


오늘은 아래층 보다는 위층이 좋다

하얗게 길을 긋는 백조를 따라가다가 문득 나는

내가 날 수 있는 동안의 요금을 적어본다

공간의 허공이 넓을수록 삶의 계산대에 기대어

세어보는 숫자는 좀 여유로울까

편도인 이 계절이 짝수가 아닌 홀수이듯이

저 길은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내일로 가는 길이라고

 

백조의 흩어진 날개 구름을 모아 삼월은

파랗지도 노랗지도 않은 들판을 편지지로 펼쳐

기어이 내일로 떠난 애인에게 다 속삭이지 못한

나의 변명을 쓰게 한다

구름의 겉 표지에 제목을 붙여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바람의 심장을 흔들 것이다

첫 장을 열면, 띄어 쓰기 사이로 비가 내릴 것이다

그리고 변명은 문장마다 얼룩진 꽃 피겠다

 

새들의 하루가 허공에 묻혔다 내려앉는 밤

고요 속의 어둠이 이름을 지워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더 붉고 차디차게 자란 어둠이 마르지 않은 목소리로 묻는 것이다

편도가 좋은지 왕복이 좋은지를......

그리고 아침인 내일로 가는 것이다

나는 삼월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쓸 것이다

왕복요금을 내고 가는 삼월은 없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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