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풀꽃 차
김정기
친구는 지리산에서 구했노라고
유리 항아리에 든 풀꽃 차를 나무탁자위에 놓고 갔다
빨치산이 살던 山麓에서 산과 싸우고
땡볕과 싸우고 싸우는 여전사의 이야기도 놓고 갔다
지금 그에게 말을 걸면 산꽃들이 살아날까봐 참고 있다
나를 데리고 지리산 기슭으로 가는 풀꽃 차 한 잔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산의 향기가 온몸으로 배어나
처참한 목덜미 살 한 치라도 당길 수 있으랴
밤이면 달빛 스며든 대궁에
소리꾼의 판소리 한 가닥 새어나오고
어두움에 지쳐 번개 치는 날이면
그 계곡의 물소리, 우려낸 찻물에서 들려온다.
친구가 다녀 간 달포까지
집안에 지리산을 들여놓고
진작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지리산 풀꽃 차
그 산 냄새.
© 김정기 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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