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남은 여름 / 김정기

서 량 2022. 12. 21. 18:45

 

남은 여름

 

                              김정기

 

 

여름 강에 물고기들은 내 편이다

세상의 물고기들은

모조리 내편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가 토하는 물의 숨소리를

그 빛깔을

지상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을.

 

자작나무 숲도 내 편이었다

내가 속이 비어가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순하디 순하여 속이 빈 나무들은

모두 내 편을 들어 주었다

천군만마를 얻어 겁날 것 없는 올해 

나는 붉은 피가 되어 물고기의 맥을 점령하고

나무 가지 하나로 지휘하니

싸워서 이겨 내 품에 돌아온 평화의 얼굴을 만진다.

 

그리고 그대들은 말이 없다

내 안에 쌓인 시간에 불을 질러

가을을 맞을까보다

남은 여름을 부술까보다.

 

© 김정기 20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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