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김종란
아버지 낮은 목소리 들리네 가까웁게
웃음소리 밝은 그곳 아니고
이렇게 홀로 남아 있는 어둑한 곳에
더 가까웁게
따스한 어투로 부르며
아주 여린 마음에게 하듯
바라만 보는 총총한 눈빛을 향하니
이 세상의 초침은 잠시 잦아들지
긴 눈빛으로 쫓으시던 젊음은 이제 지나서
내 아버지 마음 문 뒤늦게 밀어보면
장도를 걷는 무사처럼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닫아 걸고
불면의 밤을 이기시던 이야기꾼의 가슴에 기대면
큰 바람소리
피에 섞인 것이 아닌 영혼에 깃들어 있을 소식을
애써 들어 보시려는
녹슨 갈비뼈를 벌려 바짝 마른 심장이 깃들도록
눈 바람 가두는 오두막
묵언(默言)의 오두막에서 깃을 털며
눈물에 젖은 깃을 털면서
새로운 말(言)은 깃을 펴보다 그림자를 펄럭이며
세계의 초침 위로 날아간다
© 김종란 2010.06.16
'김종란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려나무 숲으로 / 김종란 (0) | 2022.12.18 |
---|---|
시가 사는 집 / 김종란 (0) | 2022.12.17 |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 김종란 (0) | 2022.12.16 |
연금술사 / 김종란 (0) | 2022.12.16 |
달 항아리 / 김종란 (1) | 202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