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의 詩모음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 김종란

서 량 2022. 12. 17. 19:13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김종란

 

아버지 낮은 목소리 들리네 가까웁게

웃음소리 밝은 그곳 아니고

이렇게 홀로 남아 있는 어둑한 곳에

더 가까웁게

따스한 어투로 부르며

아주 여린 마음에게 하듯

바라만 보는 총총한 눈빛을 향하니

이 세상의 초침은 잠시 잦아들지

 

긴 눈빛으로 쫓으시던 젊음은 이제 지나서

 

내  아버지 마음 문 뒤늦게 밀어보면

장도를 걷는 무사처럼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닫아 걸고

불면의 밤을 이기시던 이야기꾼의 가슴에 기대면

큰 바람소리

피에 섞인 것이 아닌 영혼에 깃들어 있을 소식을

애써 들어 보시려는

녹슨 갈비뼈를 벌려 바짝 마른 심장이 깃들도록

눈 바람 가두는 오두막

 

묵언(默言)의 오두막에서 깃을 털며

눈물에 젖은 깃을 털면서

새로운 말(言)은 깃을 펴보다 그림자를 펄럭이며

세계의 초침 위로 날아간다

 

© 김종란 2010.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