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의 詩모음

연금술사 / 김종란

서 량 2022. 12. 16. 19:07

 

연금술사

 

                              김종란

 

ICU 유리창에 늦은 오후의 햇볕 켜켜이 쌓이다가 스르르 연한 갈색으로 사라진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연금술사는 숨 가쁘게 내쉬고 있다 낡아 부서질 듯 서로 기대어 있는 아랫니가 이제 성벽은 곧 허물어지려 한다 들꿩 같은 풋풋한 가슴 슬며시 들여다 보던 검은 보석 한 쌍 그 고집스레 불붙던 두 눈 감겨 있다 女人을 향하여 미소 지으며 찬란한 빛으로 휘감던 변화무쌍한 저음의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이탈리안 담당의사를 거느리고 간호사 두 명 거느리고 느리게 암전으로 다가서는 유효기간 백 년의 라벨 이제 흐릿하게 지워진 채 매달려 있다 지금 이곳에 잠시 몸은 부려져 있다 백 년을 향해 무겁게 무겁게 떼어 놓는 발자국소리 연한 녹색으로 가라앉는 공기로 바다위로 떠오르다가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다가 그의 함선은 기울어 지기도 하며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의 大洋을 항해하고 있다

그는 짙푸른 바다 희게 타오르는 아주 먼 한점을 주시한다 손은 키에 얹은 채로 점점 크게 들려오는 바다의 함성을 듣는다 그는 웃었는가 금강석같이 단단한 흰 이가 반짝였는가 그는 몰두한다 껍질을 벗기 위해 백 년 동안 쌓아 올리려 했던 그城에서 탈출하기 위해 계기판을 바라보는 두 눈 한순간 선명하게 빛난다

그의 함선은 이미, 끈적이는 벌떼 잉잉거리는 花園 멀리 두고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베끼고 읽고 또 읽던  낡고 두터운 성경책도 이곳에 남겨두고 흰 분필 자국 하나 대양에 그어 보다가 바다를 벗어나 버렸다

하늘에 순간 서리다가 스러지는 금빛 성채(城砦)

 

© 김종란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