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수국을 위한 짧은 명상

서 량 2010. 6. 15. 22:03
 

수국이 전혀 섹시한 모습이 아니라는 변덕스러운 생각이 아까 아침에 잠깐 들었다 수국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장미처럼 보는 이의 혼을 앗아갈 만큼 강렬하지 않기 때문인지 살결이 젖빛으로 뽀얀 사촌동생처럼 호감이 가기는 하지만 내가 밤낮으로 간절히 원하는 찌릿찌릿한 전율 따위는 여간 하지 않고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수국은 따스하기만 하던 한겨울 눈사람의 아랫도리 같기도 하고 내 유아기 때 엄청나게 큰 어머니의 젖가슴만큼이나 풍만하다 수국은 그들이 넉넉하게 무작위로 껴안는 넓은 우주에 지금 마음 푹 놓고 뒹굴고 있다 더러는 모로 누워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다 그들의 마음 가짐이란 중력이 작용하거나 말거나 저 먼 은하수의 유유한 흐름이며 바로 코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설기의 화끈화끈한 체온이다 수국에는 이제 내 소싯적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화려한 슬픔조차 푸짐하게 깃들어져 있다

  

© 서 량 2010.06.15 

 

 

''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재즈 비트**  (0) 2010.06.30
|詩| 몸매  (0) 2010.06.25
|詩| 샐러드  (0) 2010.06.11
|詩| 실국수  (0) 2010.06.03
|詩| 은수저  (0) 201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