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베는 사람
김정기
날마다 나무가 쓸어진다
날카로운 전기톱에 소리도 못 지르고 쓸어진다
가끔 물위에 떠오르는 나무 가지를 건지며
그가 물 속에서도 톱질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래도록 나무를 베면서 나무냄새 외에는 맡지 못해도
그는 언제나 고요하고 환하다
아주까리 꽃대궁이 솟아 오르던 날 저녁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지고
톱밥이 온통 마을을 덮는데
그는 여전히 빛나는 톱을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나무를 벤 자리에 새 움이 돋고
숲을 이루어도 그 사람은 계속 나무를 벤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푸르다
그는 나무다
가까이서 보는 그는 날선 톱이다
오늘도 바람으로 나르며 나무를 벤다
© 김정기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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