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나무를 베는 사람 / 김정기

서 량 2023. 2. 2. 21:12

 

나무를 베는 사람

 

                    김정기

 

날마다 나무가 쓸어진다

날카로운 전기톱에 소리도 못 지르고 쓸어진다

가끔 물위에 떠오르는 나무 가지를 건지며

그가 물 속에서도 톱질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래도록 나무를 베면서 나무냄새 외에는 맡지 못해도

그는 언제나 고요하고 환하다

 

아주까리 꽃대궁이 솟아 오르던 날 저녁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지고

톱밥이 온통 마을을 덮는데

그는 여전히 빛나는 톱을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나무를 벤 자리에 새 움이 돋고

숲을 이루어도 그 사람은 계속 나무를 벤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푸르다

그는 나무다

가까이서 보는 그는 날선 톱이다

오늘도 바람으로 나르며 나무를 벤다

 

© 김정기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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