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연두가 초록에게 / 김정기

서 량 2023. 2. 2. 20:05

 

연두가 초록에게

 

         김정기

 

무릎 위로 꽃잎이 날아든다

내 자리를 비워 줄 차례를 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버티려 한다

사는 것이 어디 길가는 것처럼 되더냐

 

초록은 연두를 몰아낸다

하늘을 입에 문 초록은

잘 가라고 말한다

연두는 초록에게

막바지에 당신의 색깔이 파열될 때

나를 그리워하지 말라

나는 절벽을 걸어 내려간다

온 누리의 바람이 내 옷 깃에 스며들고

나는 새털같이 가벼워진다

무거운 초록을 입히지 않은

진득한 유월에 닿지 않은 몸으로

시간을 건너가는 눈부심으로

유유히 절벽을 내려간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의 긴 손을 잡고

 

© 김정기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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