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가 초록에게
김정기
무릎 위로 꽃잎이 날아든다
내 자리를 비워 줄 차례를 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버티려 한다
사는 것이 어디 길가는 것처럼 되더냐
초록은 연두를 몰아낸다
하늘을 입에 문 초록은
잘 가라고 말한다
연두는 초록에게
막바지에 당신의 색깔이 파열될 때
나를 그리워하지 말라
나는 절벽을 걸어 내려간다
온 누리의 바람이 내 옷 깃에 스며들고
나는 새털같이 가벼워진다
무거운 초록을 입히지 않은
진득한 유월에 닿지 않은 몸으로
시간을 건너가는 눈부심으로
유유히 절벽을 내려간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의 긴 손을 잡고
© 김정기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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