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02. 깡패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서 량 2010. 3. 15. 06:15

 우리는 전화 통화를 마칠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그만 들어가거라' 하고 아랫사람은 '그만 들어가겠습니다' 한다. 같은 경우에 양키들은 'I gotta go'라 말한다. 직역으로는 '나 가야 해' 혹은 '그만 가겠습니다'가 되겠다.

 

 이것은 참 이상한 대조를 이루는 말 습관이다. 그만 들어가겠다니. 어디로 들어가겠다는 말인가. 집 안으로? 그렇다면 지금껏 집 밖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는 것인가. 그리고 또 양키들은 어디로 가겠다는 심사인가. 갑자기 외출을 할 일이라도 생겼다는 사연인가.

 

 들어간다는 말의 배후에는 귀소본능 내지는 성적(性的)인 암시가 깔려 있다. 사극(史劇)에서 턱수염이 멋진 대감이 용모 청초한 아내에게 '임자, 야심한데 고만 자리에 듭시다' 할 때 '든다'는 잠자리에 들어간다는 의미이고 '노랑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맘에 들어' 할 때도 마음이라는 용기(容器)안으로 어떤 이상한 사내가 무단침입을 한다는 뜻. 우리의 걸쭉한 각설이 타령의 첫 소절도 '얼 씨구씨구 들어간다'가 아니었던가.

 

 정신이 나간 상태는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신이 든다는 것은 나갔던 정신이 다시 되돌아 왔다는 얘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듯이 무엇이 '든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다. , 염통이나 간에 '바람이 들'면 그건 결코 좋지 않아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양키들이 'Let's go!' 할 때 우리들 가슴이 설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안방이나 이부자리 안에 들어가는 안일함보다 어딘지 모르게 모험심이 솟는 뿌듯함이 아닌가.  

 

 '(gang)'은 고대영어에서 가다(going) 혹은 여행이라는 뜻의 동명사였고 17세기 초에 함께 몰려다니는 무리라는 집합명사가 됐다. 우리말에서는 '' ''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으로 변하고 거기에 떼거지라는 뜻의 ''가 붙어서 '깡패'라는 말이 생겨났다. 악착같이 버티어 나가는 오기(傲氣)를 속되게 이르는 '깡다구'라는 단어의 3분지 1도 영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깡패는 현재진행형의 길거리의 불량배 젊은이들이나 국회위원같이 젊잖고 나이 지긋한 당원(黨員)을 지칭한다. 그 말은 자자손손 자랑할 만한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 영어와 한자의 조합어다.

 

 '깡패'의 패()는 한자어다. 옥편에서 '패 패'라 하여 '조각 편''낮을 비'를 합친 형성문자로서 우리 어렸을 적에 날씨 청명한 운동회 날 청군 백군의 편싸움이며 걸핏하면 말로 혹은 몸으로 싸움하기를 업으로 삼는 야당과 여당의 패싸움을 방불케 하는 ''자다.

 

 패싸움이 없이 어찌 사나 싶다. 스포츠 경기처럼 깡패라는 말에는 생명력이 난동을 치는 것이다. 영화도 폭력이 난무하는 'gangster movie(깽 영화)'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정의파 깡패가 악당 깡패를 묵사발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통쾌해 한다. 깡패들은 떼를 지어 지금도 어디론지 가고 있다.

 

 숫자를 손가락으로 셀 때도 우리와 양키들은 그렇게 정반대의 손놀림을 한다. 우리는 손바닥을 활짝 폈다가 하나, , , 하며 엄지, 검지, 중지를 안쪽으로 접는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우선 주먹을 쥐었다가 원, , 쓰리 하며 엄지, 검지, 중지를 밖으로 내뻗는다. 우리의 손가락은 안으로 들어가고 양키들의 손가락은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라. 그만 들어가거나 그냥 가거나, '가기'는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인생의 오고 감이 오십 보 백 보 차이가 아닌가 하노라. 이쯤 해서 그만 들어가 볼까 한다. Man, I gotta go! -- 여보게, 나 그만 가 봐야겠네!

 

© 서 량 2010.03.14

-- 뉴욕중앙일보 2010년 3월 1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