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詩

|詩| 공습경보와 어머니의 뜨게질

서 량 2010. 6. 10. 21:08

 

 잊을 만할 때쯤 다시 공습경보가 울리기가 무섭게 게다가 가까운 꽈당 하며 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우리는 뒷마당에 있는 방공호를 제켜놓고 안방 벽장에 다들 얼른 들어가 숨는다 집안 식구가 명인지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집에 계셨던 같아

 

 어머니는 공습해제 사이렌이 울릴 때까지 벽장 속에서 묵묵히 뜨개질을 하신다 들숨 날숨 숨소리가 내 귀에 너무 크게 들린다 검붉은 털실 뭉치가 뜨게질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약간 열려진 벽장문 밖에서 뒹굴뒹굴 방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어요 털실 덩어리가 절대로 멀리까지 굴러가서 시야 밖으로 사라지지를 않네

 

 방바닥에는 구들장 위에 장판지를 깔던 사람의 신발 바닥 부분이 엷게 찍혀 있다 끝이 뾰족한 어머니의 뜨개질바늘이 북한과 남한의 쪼개진 이념 사이를 부산스럽게 횡단하고 관통한다 대나무 바늘이 가녀린 길이보다 훨씬 길어요 어머니는 누구의 스웨터인지를 짜신다 누가 나중에 스웨터를 입었는지기억이 안 나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습해제 사이렌 소리가 이제야 들리네

 

© 서 량 2010.04.13

-- 「詩로 여는 세상」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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