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무주 구천동 / 김정기

서 량 2022. 12. 15. 17:54

 

무주 구천동

 

      김정기 

 

산 위에서 보면 아홉 동네

내려가면 

여덟 동네인 산골짜기에 서 있다

아무리 찾아도 마을 하나는 없고

어진 세월만 흘러

물의 뼈들이 바위를 때리며 굴러 떨어져도

산은 말을 못한다.

 

산 까치들이 대추나무에 앉아

햇살을 쪼아대고

오래오래 들었다 놓은 팔을 벌려 다시

나를 엿보던 산의 정수리를 껴안는다.

 

드센 바람에 날아가 버린 마을에서

달의 힘줄이 뻗쳐와 곤한 잠 흔들어

깨어나 보니 평야에서 꾸는 꿈이었구나.

한세상 모였다 흩어지는 산이었구나.

굽이굽이 구천 번 돌아가는 산마루에

돌아보며 떠나는 사람이었구나.

 

© 김정기 2010.03.14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녀 / 김정기  (0) 2022.12.16
측백나무 頌 / 김정기  (0) 2022.12.15
그림도시 / 김정기  (0) 2022.12.14
젖은 꽃 / 김정기  (0) 2022.12.13
입춘의 말 / 김정기  (0) 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