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s, Ryang Suh

|Critique| Meaningful Love

서 량 2010. 1. 23. 03:58
 
I.
 
          Meaningful Love
 


     John Ashbery
 
 
What the bad news was
became apparent too late
for us to do anything good about it.
 
I was offered no urgent dreaming,
didn't need a name or anything.
Everything was taken care of.
 
In the medium-size city of my awareness
voles are building colossi.
The blue room is over there.
 
He put out no feelers.
The day was all as one to him.
Some days he never leaves his room
and those are the best days,
by far.
 
There were morose gardens farther down the slope,
anthills that looked like they belonged there.
The sausages were undercooked,
the wine too cold, the bread molten.
Who said to bring sweaters?
The climate's not that dependable.
 
The Atlantic crawled slowly to the left
pinning a message on the unbound golden hair of sleeping maidens,
a ruse for next time,
 
where fire and water are rampant in the streets,
the gate closed—no visitors today
or any evident heartbeat.
 
I got rid of the book of fairy tales,
pawned my old car, bought a ticket to the funhouse,
found myself back here at six o'clock,
pondering "possible side effects."
 
There was no harm in loving then,
no certain good either. But love was loving servants
or bosses. No straight road issuing from it.
Leaves around the door are penciled losses.
Twenty years to fix it.
Asters bloom one way or another.
 
© 2005  John Ashbery, From Where Shall I Wander: New Poems
 
 


의미심장한 사랑 
       존 애쉬베리
 
 
나쁜 뉴스가
너무나 뒤늦게 분명해져서
우리가 좋은 조치를 취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게는 다급한 꿈이 주어지지 않았어,이름을 필요로 하거나 하지 않았지.모든 게 제대로 마무리 된 거야. 
중간 사이즈 도시의 내 의식 속에서
들쥐들이 거대한 동상을 만들고 있네.푸른 방이 저기에 있네. 
그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았어.일상이란 그에게는 하나같이 같은 날이었어.어떤 날은 그는 결코 방을 떠나지 않았고
그리고 그런 날들이 가장 좋은 날들이었어,훨씬. 
비탈길 아래로 더 내려가서 시무룩한 정원들이 있었다,개미집들이 알맞게 자리잡은 듯 보였지.소시지는 어설피 요리됐고,포도주는 너무 차고, 빵은 녹았다.누가 스웨터를 가져오라고 말했나?기후에 그다지 의존할 수 없어. 
대서양이 서서히 왼쪽으로 기어올라 왔지
잠자는 처녀들의 풀어진 황금 머리칼에 메시지를 못 박으며,
요 다음 번에 써 먹을 속셈으로다가, 
불과 물이 활개를 치는 거리에서,대문이 닫혔다 -- 오늘은 방문자도 없고분명한 심장박동도 없네. 
나는 동화책을 없애버렸다,오래된 내 차를 저당 잡히고, 유령의 집에 가는 티켓을 사고,"가능한 부작용"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며
여섯 시에 여기에 돌아왔다.  
그때는 사랑한다는 것이 해롭지 않았지,확실한 이득도 없었어. 그러나 사랑이란 노예나상사를 사랑하는 거였어. 사랑에서는 곧은 길이 나오지 않았어.문 주변의 낙엽들은 연필로 그린 잃어버린 것들이다.그걸 고치는데 20년이 걸렸지.쑥부쟁이들은 어쨌거나 피어났고. 
 
© 2005년 존 애쉬베리의 『어디로 방황할까: 새로운 시들』에서
 
(필자 譯)
 
 
 우리는 시를 씀에 있어서 걸핏하면 너도 나도 자기가 체험한 삶의 순간순간들을 일종의 다큐멘터리로 남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피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편의 시가 수필인지, 일기인지, 푸념이나, 수다떨기에서 그치는지 분명치 않을 때가 허다하다. 물론 그런 시적 기록에서 간혹 깊은 감명이 오는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시는 한 번 읽고 나면 다시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약간 감명 깊은 영화가 좀 좋게 기억에 남는다고 해서 일부러 그 영화를 정색을 하며 다시 보고 싶지는 않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위에 소개한 존 애쉬베리의 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진술 따위는 하지 않는다. 노골적인 사건의 진술은 신문기사와 비슷해서 그 내용이 여간하지 않고서는 독자에게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이 시인은 자기의 흘러간 체험을 추억하고 있는 눈치가 보이지만 독자들에게 세밀한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자신의 현재상태를 묘사하는데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독자는 왠지 모르게 그의 시를 거듭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요새처럼 일회용 시가 인터넷에 범람하는 시대에, 함초롬한 연시戀詩를 애호하는 독자들은 이 시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하며 금방 외면하는 수도 있으리라. 
1927년에 뉴욕의 로체스터(Rochester)에서 태어난 존 애쉬베리는 지금껏 무수한 상을 받았지만 다소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 시인이다. 그는 한 산문집에서 엘리자벳 비숍(Elizabeth Bishop)을 언급하면서 스스로를 초현실주의 법칙도 제대로 모르는 무모한 본국산(homegrown: 집에서 기른) 초현실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다.
 
 예일 대학 영문학 주임교수인 랭던 해머(Langdon Hammer) 2008년에 "미국 시의 역사에 있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존 애쉬베리처럼 크게 자신을 반영시킨 시인은 없었다."며 그를 극찬했다. 하버드 영문학 교수 스티븐 버트(Steven Burt)는 존 애쉬베리가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나 월트 위트만(Walt Whitman)보다 어휘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시인으로서 티 에스 엘리옷(T.S. Elliot)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 했다. 
 존 애쉬베리는 1949년에 하버드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다시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원을 수료한 바 있다. 그리고 50년대 중반부터 1965년까지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파리에서 지내면서 근 10년 동안 불문학을 공부한 재원이기도 하다. 
 1970년부터 Brooklyn College 교수로 있다가 1980년에 Bard College로 옮겨서 2008년에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뉴욕주 계관시인으로 지명됐고 수 년간 'Academy of American Poets'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오래 전 1967년에 출간 된 그의 시 「방갈로: The Bungalows」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Your program worked out perfectly. You even avoided
The monotony of perfection by leaving in certain flaws:
A backward way of becoming, a forced handshake,
An absent-minded smile, though in fact nothing was left to chance.
 
............
 
Who cares about what was there before? There is no going back,
For standing still means death, and life is moving on,
Moving on towards death. But sometimes standing still is also life.
 
당신의 프로그램은 완벽하게 풀렸다. 당신은 심지어모종의 결점을 남겨둠으로써 완벽의 무료함을 피한 것이다:거꾸로 완성하는 법, 억지로 하는 악수,정신 없는 미소, 아무 것도 사실은 우연에 맡기지는 않았지만.  
... (중략)...
 
전에 무엇이 거기에 있었는지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돌아가지 못한다,왜냐하면 조용히 서 있는 건 죽음을 의미해, 그리고 삶은 움직이는 것,죽음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 그러나 가끔은 조용히 서 있는 것 또한 삶이다. 
(필자 譯)
  
 
II.
 

 

Convergences

 

     Donald Hall

 

At sixteen he dismisses his mother with contempt.

She hears with dread the repulsive wave's approach

and her fifty-year-old body smothers under water.

 

An old man loses half his weight, as if by stealth,

but finds in his shed his great-grandfather's knobbly cane,

and hobbles toward youth beside the pond’s swart water.

 

She listens to the dun-colored whippoorwill's

three-beat before dawn, and again when dusk

enters the cornfield parched and wanting water.

 

He imagines but cannot bring himself to believe

that the dead woman enters his house disguised

or that the young rabbi made vin rouge from water.

 

Within the poem he and she—hot, cold, and luke—

converge into flesh of vowels and consonant bones

or into uncanny affection of earth for water.

 

Source: Poetry (January 2010).

 

 

집합점들

 

  도날드 홀

 

열 여섯 살에 그 놈은 어머니를 경멸하며 멀리했지.

어머니는 두려워하며 역겹게 접근하는 파도와

50살의 육체가 물속에서 질식하는 소리를 들었지.

 

한 노인은 비밀스럽게 몸무게의 반을 잃었지만

움막집에서 증조부의 울퉁불퉁한 지팡이를 발견한다,그리고 거무스레한 연못 물가 젊음에게 비틀비틀 다가간다.

 

그녀는 어둠침침한 새벽이 오기 전 거무죽죽한

쑥독새의 삼박자와, 그리고 다시 황혼이물을 원하며 목타는 옥수수 밭에 들어서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상상하지만 제 정신으로 믿을 수가 없다

죽은 여자가 자기 집으로 변장하고 들어선 것이나

젊은 유태인목사가 물로 적포도주를 만든 것을.

 

시 속에서 그와 그녀는 -- 뜨겁고, 차갑고, 그리고 미적지근하게--

모음의 살과 자음의 뼈로 집합하거나

또는 서로 물을 찾는 흙의 으스스한 애착심으로 집합한다.

 

출처: <포에트리> (2010 1)

 

(필자 譯)

 

  

 연못 물도 새벽의 빛도 검고 어둡기만 한 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목이 바짝바짝

타는 감각을 불러 일으키게 함과 동시에 모종의 에로틱한 분위기를 이차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그런 느낌을 시사한다. 남녀가 모음과 자음

으로 또는 살과 뼈로 서로 목타게 갈구하는 그 으스스한 본태를 거리낌없이 묘

사한다. 경인년 정초에 출간된 이 시는 일견 관념적인 제목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종국에는 남녀, 혹은 모음과 자음이 교합하는 장면을 스스럼없이

제시한다. 이 시인은 인생에 대한 위대한 교시나 깨달음을 일깨우려는 폼을 잡

는 가식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겸손하고 진솔한 호소력에 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날드 홀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끊임 없는 경이감을 표출하는 미국 현대시의 대

변자 중의 하나로 세인의 관심을 끄는 80을 좀 넘은 시인이다. 일지기 1955년에

출간한 첫 번째 시집 『망명과 결혼: Exiles and Marriages』에서 대단한 명성을

떨쳤지만 근래의 시들이 더욱더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그는 시

뿐만 아니라, 수필, 단편소설, 희곡, 심지어는 어린이 서적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쳐

온 실로 다양한 글쟁이다.

 

 그는 1928년 커넥티컷 뉴헤이븐(New Haven)에서 출생해서 햄든(Hamden)에서

자라났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 같은 기질은 어머니에서, 눈물은 아버지에게서 물

려 받았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어린 나이 열두 살에 에드거 알란 포의 단편소설들

을 읽고 자기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16살에 벌써 시를 출판

하고 로버트 프로스트와 처음 만난 그 이듬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앞서 소개

한 한 살 연상의 존 아쉬베리(John Ashbery)와 어깨를 나란히 하버드에서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하버드를 졸업한지 2년 후인1953년부터 8년 동안 파리스 리뷰

(Paris Review)편집인으로 일을 한다. 1957년부터  1975년 까지18년 간을 미시간

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역임할 즈음 저보다 19살 연하의 제자 제인 케니언

(Jane Kenyon)만나 1972년에 결혼한다. 그녀는 한때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홀은 1989년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별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으나 운 좋게도 암의

진전이 멎고 지금까지 별탈 없이 지내고 있다. 반면, 그의 부인 케니언은 1994년에 백혈

병이라는 진단을 받기가 무섭게 일년이 좀 넘어서 47세의 아까운 나이로 사망한다.

녀의 죽음은 홀에게 극심한 심리적 파문을 일으킨다. 그는만약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선집(Otherwise: New and Selected Poems: 1997년 발간)에서 자기 부인의

병상일지와 죽음에 대한 분노를 엄청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2002년에 출간된

색칠한 침대:The Painted bed에서도 케니언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폭포처럼 쏟아 놓는다. 당시의 뉴욕 타임즈는 그의 시집을 "조잡한 성애性愛, 떠들썩한

분노와, 자폭적인 조롱"이 충만하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홀이 받은 수많은 상 중에 가장 괄목할 만한 영예는 2006년에 계관시인(Poet Laureate)

으로 지명 받은 일이다. 그때 <아이오와 리뷰: Iowa Review>에서는 그를 "시에 대한

치열한 입맛을 가진 치열한 시인"이라며 "그는 자기의 생각을 서슴없이 그대로 시에

표출하는 시인"이라 평한 바 있다. 소위 옥을 다듬듯이 언어를 절제, 혹은 정제하는 것

을 시의 기법으로 삼으면서 눈을 내리깔고 목청을 낭랑하게 가다듬는 대부분 우리 한국

시인들의 풍조에 좋은 규범이 될 수도 있는 시작태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는 지금 뉴햄프셔의 전원에서 농장 일을 하면서 아직도 맹렬하게 시작에 몰두하고

있다.

 

 

© 서 량 2010.01.21

-- 2010년 봄호 <詩로 여는 세상>에 게재 (293~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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