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화려한 겨울

서 량 2009. 12. 12. 20:41

 

가을이 불쌍해 죽겠어

가을은 초조하게 미래를 기약했지만

대롱대롱 매달리는 마지막 낙엽을 짐짓 묵살하고  

이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나

 

가을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

겨울도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한다 뿐이지만

내 어릴 적 소나기 주룩주룩 눈물처럼 쏟아지던 어느 날

캄캄한 대낮에 하늘에서 미꾸라지들이 우박처럼 떨어지는

저 막무가내 미꾸라지 떼, 미꾸라지들이 뭘 잘못했다고?

 

가을이 슬금슬금 자리를 비울 때, 안색이

부끄럽게 달아오르는 겨울이며

아니꼽지, 아니꼽지만 곱게 내숭을 떠는, 다음다음 차례

때묻은 번호표를 손에 쥐고 있는 새 봄이 오기 전에

이렇게 우리가 불량하게 죽어가다니! 우리는 언제부터 겨울,

그 엄청난 띄어쓰기 맞춤법에 리듬 맞추는 배꼽 댄서가 됐나

 

 

© 서 량 200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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