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詩

|詩| 테리 집안의 여자들

서 량 2009. 7. 15. 22:02
 

 

 커다란 푸른 눈이 시원하기만 한 테리는 39살의 백인 이혼녀로서 술을 완전히 끊은 지 14 년이다. 그녀는 15살 난 저능아 둘 째 딸과 같이 살면서 사방팔방 가정부로 일해 번 돈으로 근사한 일제 차를 몰고 다닌다.

 

 17살의 첫 딸 메리는 학교를 관두고 마약 딜러와 동거하면서 밤이면 코케인을 하고 엄마를 찾아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행패를 부린다. 그러나 테리가 경찰에 고발하여 보호영장을 받은 이후로는 집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 테리는 메리가 전화를 걸면 즉시 전화를 끊는다. 그래도 메리는 가끔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전화를 걸어 이런 저런 메시지를 남긴다.

 

 72살의 테리 어머니가 차로 15분 거리에 혼자 사는데 그녀는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술집에서만 일을 해 온 고주망태 술꾼이다. 테리는 어머니와 소식을 끊고 지낸다.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도 두 말 없이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그러다가 근래에 마음이 약해져서 간혹 짤막한 용건을 주고 받기도 한다.

 

 어느날 밤 메리가 “나는 지금 임신 5개월입니다. 당신은 내 엄마니까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어요. 애가 딸이라 합니다.” 라는 메세지를 남긴다. 테리는 곧 메리에게 전화를 걸어, “니가 애를 난다 해도 나는 절대로 니 애를 키워 주지 않겠다.” 라고 잘라 말한다.

 

 한 시간 후에 테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머니는 메리가 애를 낳으면 자기가 키워 준다는 약속을 했다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선언한다. 테리는, “당신처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미치광스러운 술꾼에게 내 손녀를 맡길 수 없어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법정에 가서 법대로 싸워 애를 고아원으로 보내겠습니다.” 라고 대꾸한다.

 

 커다란 푸른 눈이 시원하기만 한 테리는 며칠 밤을 지새운 후 정신과의사에게서 수면제를 처방 받아 이제는 잠을 잘 잔다. 태어나지도 않은 손녀의 장래를 걱정하느니 잠이나 푹 자고 다음 날 남들 집안 청소를 열심히 해주기 위해서다.

 

© 서 량 2004.03.09

-- 세 번째 시집 <푸른 절벽>(도서출판 황금알, 2007)에서

시집 소개: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1601444&orderClick=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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