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심리학자와 'holding environment'에 대하여 토론했다. 영국 정신분석가 'Donald Winnicott (1896~1971)'이 주창한 이 엄청난 개념에 나는 평생을 바쳐온 셈이다. 인터넷은 이 말을 '안아주는 환경', '보듬어주는 환경'이라 옮긴다. 약하고 청순한 아기들을 품어주고 보호하는 환경은 우리 모두의 필수여건이다.
'hold'는 영한사전이 열거하는 스물 몇 개의 풀이 중 첫 번째가 '잡다'라는 해석이다. 비틀스의 히트 송 'I want to hold your hand', 그리고 연인들끼리 쓰는 말 'Hold me tight'를 생각한다. 좋아하는 상대의 손을 잡거나 몸을 껴안는 것이 우리의 천성이다.
나는 'holding environment'를 '잡아주는 환경'이나 '붙잡아주는 환경'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의 심리를 바로 잡아주거나 걱정을 붙잡아주는 정신과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hold'는 양면성이 넘치는 말이다. 버티다, 감금하다, 보류하다, (수화기를 손에 들고) 기다리다, 'Hold your breath, 숨쉬지 마세요' 같은 뜻을 품고 있다. 'Hold your fire! (나도 할말이 있으니까) 잠깐만 멈춰!' 하는 다급한 요청과 'Hold on, 잠깐 기다려', 또는 'Hold your tongue, 말하지 말아라'에서는 억제적 뉘앙스도 풍긴다.
잡는다는 말에 비하여 붙잡는다는 상황은 절박감을 불러일으킨다. 신파조로 떠들어서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여자가 남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며 버리지 말아달라 외치는 옛날 곡마단 연극무대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
잡아준다는 말과는 달리, 잡는다는 표현에서는 피 비린내가 난다. 누가 복음 15장 23절에서 돌아온 탕자를 환영하는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Bring the fatt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시점에서 당신은 정신을 바짝 차리기 바란다. 우리말 성경은 'kill'을 '죽이다'라 하지 않고 '잡다'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사위가 집에 오면 닭을 잡는다는 장모의 마음가짐과 아들을 대접하려고 송아지의 죽이라고 기꺼이 명령하는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같은 것이 흥미롭다. 우리가 몹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아이구, 생(生)사람 잡네!' 하고 외치는 것도 살아있는 사람이 죽음을 피하려는 사생결단의 항변이다.
'environment, 환경(環境)'은 'environ, 둘러싸다, 감싸다'의 명사형으로 이미 보호적 의미가 잠복근무 하고있는 의미심장한 단어! 그래서 '안아주는 환경'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애틋한 의지와 어떤 울타리 같은 것이 진작부터 공존해 왔다.
아기와 어미 사이를 연결시키는 모성애적 애착심리의 향기가 피어 오른다. 정신과의사와 심리치료사는 약하고 청순한 아기를 품에 안듯 환자의 불안증세와 살벌한 세상에 던져진 실존주의적 아픔을 보듬어주는 환경을 만들어내야 하는 전제조건에 귀의한다.
'Donald Winnicott'이 개발한 가장 큰 사상체계는 '과도기 과정(transitional stage)'이다. 애착심리의 다음 단계는 자아의 독립성을 키우기 위한 성숙의 계단을 숨차게 올라가는 숙명과의 타협이다.
객담이지만, 혹가다 애착(愛着)이 고착(固着)으로 굳어지면서 심리치료사는 생사람을 잡는 수가 있다. 나와 열띤 토론을 했던 그 심리학자도 그 점에 신경을 쓰는 듯 했다. 결국 아기가 어미 곁을 떠나야 하듯 어미도 아기 곁을 떠나야 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서 량 2017.06.10
-- 뉴욕중앙일보 2017년 6월 1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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