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73.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서 량 2021. 2. 2. 22:04

 

우리 전래동화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대적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가.  '팥죽할머니'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정감이 듬뿍 가는 사연들을.

 

팥죽할머니는 닭이며 송아지를 잡아먹는 호랑이를 팥죽을 주겠다며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초대한다.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불 꺼진 화로를 후후 불라 해서 눈에 재가 들어가게, 고춧가루를 탄 물로 눈을 씻게, 그리고 바늘을 촘촘히 박아 놓은 행주로 따가운 눈물을 닦게 한다. 호랑이는 마당으로 뛰어나가다 개똥에 미끄러지고, 멍석 도깨비에 둘둘 말리고, 지게 도깨비에 얹혀 운반되어 강물에 첨벙 던져진다.
 
당신은 또 떡바구니를 들고 산언덕을 넘을 때마다 번번히 호랑이를 만나는 떡할머니를 기억하는가.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떡을 다 뺏어먹은 호랑이가 할머니의 팔과 다리와 몸통을 차례차례 먹고 집에서 노모를 기다리는 오누이마저 잡아먹으려 하는 무시무시한 스토리를.

 

남매는 마당으로 뛰어나가 하느님이 내려주신 밧줄을 타고 승천하고 호랑이는 밧줄이 끊어져 수수밭에 떨어져 피 흘리며 죽는다. 아직도 수숫대에는 그 호랑이의 붉은 핏빛이 서려있고 누이는 해가 되고 오빠는 달이 됐다는 전설.

 

우리 동화 속 등장인물(?)들은 왜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는가.

 

'catch'를 새삼 사전에서 찾아봤다. 동사로, 잡다; 뜻을 알아차리다; 감기나 병에 걸리다; 주의를 끌다, 등등. 명사로는 사물을 잡는 행위; 체포; 속임수; 포획물; 신랑감 또는 신붓감; 야구에서 공을 잡는 행동, 따위로 나와있다.

 

'catch'에는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다' 라는 우리말에서처럼 동물을 죽여 맛있게 먹는다는 의미가 없다. 끽해야 범인을 잡거나 생선을 낚거나 감기에 걸린다는 뜻이 고작이다. 양키들의 캐치는 주의력과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우리는 포획물을 먹어 치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법.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위기의식으로 살아온 우리의 정신체계가 아니던가.

 

당신이 좋아하는 축구처럼 숨가쁜 승패의 연속이 아니라 너무 여유가 만만해서 좀 지루한 야구는 투수와 타수와 포수(catcher)가 삼위일체를 이룬다. 캐처가 공을 잡는 행동은 상대 선수를 저지하는 공놀이에 불과할 뿐, 호랑이에게 잡힌 우리 떡할머니의 공포 분위기가 전혀 없다.

 

'catch-as-catch-can'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라는 뜻. 자유분방하게 모험을 감행하는 여유가 엿보이는 표현이다. 이 말에도 한쪽이 다른 쪽을 잡아먹는 위기감은 결코 느껴지지 않는다.

 

'If the sky falls, we shall catch larks'는 '하늘이 무너지면 종달새나 잡으면 된다'는 아주 낙천적인 영국 속담이다. 이 말 또한 종달새를 잡아먹겠다는 의도는 없는 것으로 들린다. 아무리 참새구이에 익숙한 우리들이지만 양키들이 목청 좋은 종달새를 숯불에 구어 먹는 장면은 상상하기가 힘이 든다.

 

우리의 모성(母性)은 팥죽할머니와 떡할머니로 양분 된다. 둘 다 호랑이를 이겨내지만 팥죽할머니는 통쾌하게 호랑이를 퇴치하는 맹렬여성인 반면, 떡할머니는 자기 목숨을 서서히 희생시킨 후에 다음 세대로 하여금 자자손손 한 맺힌 곤경을 극복하게 하는 시나리오라는 점을 당신은 유의해 주기 바란다.

 

이것은 마치도 호랑이 굴 같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 부모들이 그들의 2세를 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정황을 보는 듯하다.  그리하여 우리의 후세들은 지구촌의 만인을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와 달처럼 찬란한 광명과 빛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 서 량 2009.02.01--뉴욕중앙일보 2009년 2월 4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82339

 

[잠망경]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전래동화에서 사람과 호항이가 서로 대적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가. ‘팥죽할머니’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정감이 듬뿍 가는 사연들을. 팥죽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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