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71. 소 이야기

서 량 2009. 1. 5. 21:23

 카우보이(cowboy)는 1725년에 생긴 단어다. 차양이 멋진 모자에 권총을 차고 목장에서 일하는 텍사스의 양키들이 암소만 상대했던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cow'는 고대영어로 소가 음매~ 하며 우는 소리에서 생긴 의성어다. 숫소는 'bull'이라 하는데 암수 관계 없이 소를 총칭하는 'ox' 또한 워낙 숫소라는 의미였다.

 

 'bull'은 'bole(나무 둥지)'과 어원이 같은데 14세기경 희랍어로 '부풀은 음경'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bull' 하면 수컷 냄새가 물씬 난다. 'bull's eye'는 과녁의 중심을 뜻한다. 이 또한 남성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1915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슬랭으로 'Bullshit!'은 직역하면 소똥, 우리말의 개똥에 해당된다.'개똥 같은 소리 집어 쳐!'라 번역하면 근사하게 들린다.

 

 미국에서 증권폭락이 일어난 다음다음 해, 1989년 12월 15일에 월 스트리트 길바닥에 숫소 한 마리의 조각품이 떡 놓여졌다. 이태리계 조각가인 디모디카(Di Modica)가 3십6만불을 들여 제작한 예술품. 지금도 뉴욕 방문객들은 그 앞에서 중뿔나게 사진을 찍고 소의 뿔과 음경을 만지면 돈이 생긴다는 미신 때문에 갑남을녀들이 자꾸 만져대서 그 두 부위가 빤질빤질해졌다는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 소를 'charging bull (돌진하는 숫소)'라 부르며 공격적인 미국 금융계의 낙천성과 번영을 상징한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뉴욕 시의 철거명령이 내려졌으나 숱한 뉴요커들의 반대로 원위치에서 두 블록 남쪽으로 옮겨져 바로 이 순간에도 브로드웨이를 향하여 만인의 손때 묻은 뿔과 음경을 힘껏 치켜들고 있다. 

 

 구약성경 출애급기34장 2절에 나오는 금송아지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가 40일 동안 산에 올라 여호와가 하사한 십계명 현판을 구해오는 동안 참을성이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Aaron)에게 우상을 만들기를 부탁하니 아론이 백성들의 금붙이를 모아 녹여서 금송아지를 제작하고 서민들은 그 동상 앞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기뻐한다. 그때 마침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우상 숭배자들에게 진노한 나머지 금송아지를 태워 재로 만든다.  3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상숭배는 금물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금송아지였을까.

 

 세종 30년 1448년에 발행된 <석가여래십지수행기(釋迦如來十地修行記)>에 나오는 <금우태자전(金牛太子傳)>은 19세기에 <금송아지전>으로 활자화 됐는데 그 내용은 얼추 다음과 같다.

 

 어느 서역 왕이 왕비 셋을 두었는데 첫째 왕비 보만부인이 태자를 잉태하자 시샘이 난 둘째와 셋째 왕비들이 태자를 산에 갖다 버린다. 태자는 맹수와 백학(白鶴)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시 궁중의 사나운 암소에게 던져지고 태자를 꿀꺽 삼킨 암소는 금송아지를 낳고 왕은 이 금송아지를 자식처럼 사랑한다.

 

 사태를 눈치챈 왕비들은 꾀병을 부리면서 금송아지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우긴 결과 급기야 태자는 백정에게 보내지지만 백정은 금송아지 간 대신에 개의 간을 바치고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그 후 자초지종을 알게 된 왕은 두 교활한 왕비를 극형에 처하고 금우태자는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다가 천상으로 올라가 석가여래가 됐다는 해피 엔딩이다.

 

 이렇듯 우리의 소는 유순함의 상징이지만 양키들의 소는 좌충우돌하는 공격성을 대변한다. 'a bull in the     china shop'은 사기그릇 가게에 뛰어든 숫소라는 뜻. 접시와 그릇 깨지는 소리로 귀가 따갑지 않은가. 기축년에는 미국도 한국도 억세고 끈질긴 숫소의 에너지로 경제위기를 왈칵 뒤집어 놓기를 바라는 소망이 간절하다.

 

© 서 량 2009.01.04

--뉴욕중앙일보 2009년 1월 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